(임시) 내가 죽음이 무섭지 않은 이유

일단 무슨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다. (난 무교다.)

그리고 죽음이 정말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워낙 겁이 많기 때문에 두렵지 않은 이유를 찾다가 어느정도 덜 두려워해도 될만한 위안거리를 찾았다랄까?

그리고 아직 정리가 다 된 생각도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어느정도 정리해서 올려두려고 한다.)

어릴 때는 죽는게 정말 무서웠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데 나 혼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버리는 느낌?
그러니까 첫번째는 지금의 살아있는 내가 완전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무서웠고
두번째는 내가 죽을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존재? 나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이 세상은 멀쩡히 돌아갈거라는 것? (그런데 뭐 유명인이라고 뭐 다른게 있을까? 결국은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데···.)

지금은 그때처럼 그렇게 무섭진 않다. (어쩌면 그때처럼 깊게 집중해서 생각을 안 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도 같다.)

일단 첫번째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정말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영생을 살 수 있게 된다면? (내가 죽고 다음날 그런 기술이 개발되면···. 개짜증날듯. 어차피 나는 죽고 아무것도 모를테니까 상관 없으려나? 오히려 기술이 개발됐지만 내가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죽으면 정말 억울할듯.)

그런데 오히려 죽지 않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는 상상을 해보니까 죽음이나 삶이 별게 아니게 느껴졌다.

뭐 만화속에 나오는 영생의 캐릭터가 영원히 죽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고 제발 죽여달라고 말하는 그런 식의 뻔한 생각은 아니다.

사실 난 영원히 죽지 않으면 존나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도서관이라는 사람은 영생을 살게 되면 이것도 도전하고 저것도 도전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 자신이 있다고 하던데
난 반대로 나태하게 영원히 잘 살 자신이 있다. ㅋㅋ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뭔가를 목표로 삼고 꿈꾸며 살다가도 포기하고 까먹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또 같은 목표를 삼으며 열의에 타오르고 행복해하겠지? ㅋㅋㅋㅋ (메멘토냐?)
계속 도전하고 포기하는 삶을 반복하면서 살 것 같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전에 봤던 것을 오랜만에 다시 보면 또 재미있지 않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계속 비슷한 경험을 해도 또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고 나처럼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은 전에 경험했던 것도 까먹고 처음하는 것처럼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나와는 달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진 못한다. 과거의 매 순간의 기억을 정말 현재처럼 계속 떠올릴 수는 없을테니
결국 정말 삶의 매 순간이 고통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영생은 좋은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삶이 별것 아닌 것으로 느껴진 이유는···.
이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조금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복제인간에 관한 영화를 본적이 있다.
사실 영화 내용이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이 자신의 행세를 하는 복제인간을 죽였는데 사실 자신도 복제인간이었다는 부분만 기억난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잠을 자는 사이에 누군가 나를 납치하고 나와 완전히 동일한 복제인간을 가져다 놨다면?
그러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당연히 납치되어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있을 내가 진짜라고?
그건 내가 설명을 해서 아는 거고···.
제 3자의 시선에서 보면 그게 정답이겠지만
내 스스로는 어떨까?
처박혀 있는 원래 몸의 나는 내가 진짜라고 생각할테지만
복제인간도 스스로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

결국 똑같은 내가 하나 더 있는데 그저 복제인간이라는 꼬리표만 붙어있을 뿐.
사실 그것은 그냥 나인게 아닐까?

말이 좀 억지같은 느낌인데
조금 다른식으로 말해보겠다.

내가 잠을 자고 일어났다.
내가 어제의 진짜 나라는 보장이 있나?
명확한 근거나 증거가 있냐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나의 유전자를 검사한다거나 CCTV를 설치해서 잠을 자려고 누웠던 원본의 내가 바꿔치기를 당한 건지 그냥 그대로 자고 일어난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내가 진짜 어제의 나라는 것을 확실한 근거가 없다!

내가 정말 진짜라고 확신하는 것은 맹목적일 뿐이다.
내가 진짜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스스로 확신하는 것,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 정도?
그것 말고는 없다.
그것조차도 사실은 착각에 불과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만큼 내가 나를 나라고 생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기억력을 따져보자.
인간은 얼마나 디테일한 기억을 할 수 있을까?
정말 타고난 독특한 인간이 아닌 이상 인간은 대부분의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지나쳤던 사람의 외모나 옷 스타일부터 내가 아침에 김치 몇 조각을 먹었는지까지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이나 두루뭉술하게 기억하는 것들 뿐이다.
또한 그 적은 기억마저도 틀리게, 다르게 기억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결국 그 말은 결론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나라는 분명한 존재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확신, 자각 그 자체도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식으로 얘기를 더 해보자면
나는 매일 잠을 자면서 납치돼서 죽고 나의 복제인간이 매일 아침에 깨어나서 하루를 살아간다고 누군가 말해도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나는 증명할 수가 없다.

결국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인간은 잠을 자기 때문이다.
잠을 자면서 의식을 잃는다.
다음날 깨어난 나는 어제의 나와 분리된 새로운 존재라고 해도 부정할 근거가 없다.
그저 어렴풋한 나라는 존재의 과거의 기억과,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확실하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떤식으로 생각하면
잠을 잔다는 건 죽음을 준비하고 익숙해지게 만드는 하나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기들은 잠자는 것을 무서워하고 우는 걸까?)

그리고 이 생각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발전시켜보면
5분 전의 내가 지금의 내가 맞다는 근거도 없다.

생각해보자.
5분 전에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분명하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나?
기억이 잘 날수도 있고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나는 5분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그리고 5분 전을 기억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5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의식이 끊어진 상태라는 것을 증명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시간을 잡을 수도, 멈출 수도 없는데
그 강제적인 시간의 흘러감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계속 끊어진다.

결국 나는 5분, 아니 1분, 아니 그보다도 더 작은 단위로 계속 죽고 다시 태어나거나 복제인간으로 교체가 된다고 해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할 근거가 없다. (5분마다 계속 죽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계속 이어진 삶을 살아간다는 의식, 자각 자체가 사실은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인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장의 사진을 빠르게 넘기면서 관객을 착각하게 만든 것에 불과한 것처럼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나는 “살아있다”, “살아간다”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냥 맹목적으로 그렇게 주입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뿐,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매 순간 끊어진 것이나 다름 없는, 분리되었다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삶이 너무나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죽음이 별것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를 확신하고 내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분명하고 의미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닌가? 그것이 멈추고 더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애초에 내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내가 세상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그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면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불완전하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결국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밑바탕 위에서 내가 즐거움과 편함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더 오래 많이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사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삶은 주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죽음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단 하루를, 단 1시간을, 단 1초를 살아도 정말 행복했다면 그 순간 자체는 아무도 바꿀 수 없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순간이 된다.

그래서 다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사라지고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내가 죽는 순간을 스스로 인지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두려움을 느끼면서 죽게 될 것이 가장 무섭다.
그냥 허무하게 사라지듯이, 아무것도 모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또 드는 생각이 나는 자살에 대해서 별로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살면서 매 순간의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면 내가 자살을 함으로써 내 가족이나 친구는 아주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게 될 것 아닌가?
그런식으로 보면 자살은 너무 이기적인 선택 같다.
물론 기본적으로 자살이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아픔을 겪게 해선 안 되겠지. (그러니까 자살만이 나쁜게 아니고 남에게 자살을 생각할 정도의 고통을 주는 것도 나쁘다는 것이다.)

또 이런식으로도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것은 나의 기억 뿐이고
나의 기억은 매우 모호하며 불완전하다.

우리는 기억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확신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런 착각은 하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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