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호, 채식, 사회, 인간

동물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그런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채식주의자들이 그렇다.

나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나 육식을 야만적이라고 말하는 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고,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생명을 덜 죽이고 덜 고통스럽게 하려는 노력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선이나 허상, 거짓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공감을 하는 동물이다.
내가, 내 주변의 인간이 슬퍼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아주 본질적인 것이다.
꼭 물질적인 이익이나 먹는 즐거움 같은 것만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이 소중해서, 생명을 존중하는게 옳아서라기보다는 인간이 그런 다른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고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고 슬퍼하기 때문이다.
결국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인간 스스로를 위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인간의 특성을 인간성, 사회성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물을 보호한다며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지. 사실 그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비정상이 맞지.)
다른 생명의 감정을 공감하고 고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인간끼리 사회를 만들어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동물을 위해 인간을 죽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동물을 위해 덜 누린다는 개념은 충분히 의미가 있고 그것이 인간이 더 행복해지는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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