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의 문하생 구인 글을 보고 분노한 이유

어떤 만화 관련 카페에서 정말 어처구니 없는 글을 보게 됐다. 문하생을 구인하는 글이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문하생을 구합니다. 일이 바쁘기 때문에 따로 질문을 받거나 도움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프로작가가 실제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돈은 나중에 어시 수준으로 만화 작업에 도움이 되면 그때 지급하겠습니다.”

내가 빡쳐서 완전 그 구인글을 저격하는 글을 썼더니 쪽지가 왔다. (그 구인글을 썼던 작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문하생은 배우는 위치이다. 돈을 따지면 안 된다. 만화 작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돈을 줄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내용의 쪽지를 받고 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쪽지 내용까지 포함해서 까는 글을 카페에 하나 더 올렸다. (오지는 인성질) 그랬더니 어떻게 쪽지로 한 얘기를 사람들한테 할 수 있냐면서 실망했다는 둥 자기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둥의 거의 협박성 쪽지가 왔다.

“나는 당신의 닉네임을 밝히지도 않았고 당신과 대화해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아무튼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문제를 정확히 짚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제서야 정리가 됐다.

내가 문하생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 하루에 몇 시간만 있으면 되나? 아니잖아. 몇 시간 그냥 구경하는 수준이면 또 모르겠는데 만화가를 목표로 거의 하루 전부, 또는 절반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다시 말해 작가는 문하생의 아주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애초에 가르쳐 줄 생각조차 하지 않고 구인한다고? 그리고 자기가 쓸만하다 싶을 때부터 돈을 주겠다고?

문하생이 그냥 구경만 하는 위치인가? 단순 지우개질이든 청소든 집안일이든 잡일이든 뭔가를 계속 해야 하는 거잖아. 그렇게 부려먹고 돈도 안 주겠다고 미리 선언한다고?

가장 어처구니 없는 말이 만화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을 왜 구하지? (처음부터 어시스트를 구하면 되잖아?) ㅋㅋㅋㅋ 제자를 양성한다는 마인드로 가르쳐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쓸모가 없어서 돈도 줄 필요가 없는데 그런 쓸모 없는 사람을 왜 구하는 거냐곸ㅋㅋㅋㅋㅋㅋ 회사든 아르바이트든 그런식으로 말했다고 생각해봐라 난리 났지…

잡다한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면 잡다한 일을 할 사람을 구할 생각을 해야지. 왜 문하생 구할 생각을 했을까? (당연히 꽁짜로 편하게 부려먹으려고 그랬겠지.) 그리고 만화로 돈을 벌고 있으니까 만화에 도움을 주지 않으면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 그 작가가 그린 만화가 출판사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수익을 못 내면 출판사도 원고료 안 줘도 되겠네?

사실 이런 조건이라도 정말 유명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라면 밑에서 일하며 보고 배우는게 도움이 될수도 있어. 문하생이 열심히만 하면 어떤 곳에서 많이 배우고 큰 성장을 이룰 수도 있겠지. 그리고 작가가 정말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면서 부려먹기만 하진 않을지도 몰라. 내가 너무 극단적이고 악의적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 구인글의 내용 자체만 봐도 이미 그 작가의 기본적인 인성, 개념이 비정상적이라는 거야.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렇겠지. “문하생을 구합니다. 여유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돈을 넉넉히 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챙겨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매우 바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작업물에 대한 피드백과 기초에 대해서 알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사실 이런식으로 쓴 것도 어떻게 보면 사기일 수 있지.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확실히 알려주고 적절한 보상을 보장해준다는게 아니잖아. 그런데 이 카페에 구인 글 올린 작가는 대놓고 돈도 안 주고 안 도와주겠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게 어이가 없었던 거야. 대놓고 노예를 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자기는 거짓말 안 하고 사기 안 치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했다고 자위하려나?) 어떻게 그렇게 잘못된 인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의문이야.

지망생이 작가를 따라다니며 돈 1원도 필요 없으니까 밑에서 일하게만 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어도 작가가 돈도 안 주고 따로 가르쳐 줄 생각도 없다면서 지망생을 구인하는 건 아니지.

내가 미래를 위해서 당장은 손해를 보겠다고 말하는 거랑 너의 미래를 위해서 당장은 손해를 보라고 말하는 거랑은 완전히 차원히 다른 얘기잖아. (그게 바로 열정페이) 같은 내용이라도 입장에 따라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데 그것조차 구분을 못한다는 거야.

제발 돈이 없으면, 돈이 아까우면 사람을 쓸 생각을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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