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메이지 않는다는 것이란 + 쿨하다는 것

나는 미신을 믿지 않아. 하지만 완벽하게 얽메이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미신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나의 운세나 관상을 봐준다고 하면 신경이 쓰일 것 같거든. 그래서 극렬하게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거야.

그리고 특히 오늘의 운세 같은 것을 안 보려고 해. 어릴 때 오늘의 운세가 매우 좋다고 나왔는데 그날 최악이었거든. 그래서 나는 운세를 안 믿는다기보다는 미신을 보면 운수가 안 좋다는 미신을 믿는 거야. 이런 나를 보면서 내 스스로도 웃겼어. 결국 나는 완벽하게 미신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거야.

또 이런 경우도 있어. 유튜브에서 우리나라 문화나 음식을 해외 사람들이 평가하고는 해. 그런 영상을 한국인이 보는 것이 사대주의라며 그런 것을 보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우리만 알아서 잘 살면 되지 뭐하러 해외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하냐는 거야.

그건 진짜 한심한 개소리지.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다른 나라에 내 나라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거야. 사람은 원래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정의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옳고 그름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그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하면서 만들어지는 거거든.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오직 나의 행복만을 추구한다? 그건 이상적인 거야. 특히나 그런 자신의 추구하는 바를 남한테 강요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이 또 있나 싶어.

중요한 것은 오히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더 얽메이고 있다는 것이지. 그런 유튜브 영상을 흥미나 호기심으로 보고 영상의 내용이 어떻든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극복한 사람일 거야. 그래서 남한테 쿨함을 강요하는 것만큼 한심한게 또 없는 것이겠지. 남에게 쿨함을 강요한다는 것에서 이미 스스로가 쿨하지 못하다는 것이니까.

상대방이 나처럼 쿨하길 원하는 부분에서만 상대방에게 쿨함을 강요하는 건 쿨한게 아니고 이기적인 거야. 정말 쿨하다면 남이 쿨하지 못한 것조차도 이해하는게 쿨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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