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되게 막연한 것 같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변하고 변하지 않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말이야.
본성에 대한 얘기겠지? 사람이 악하게 살다가 선하게 살 수 있는가, 게으르다가 부지런해질 수 있는가 등등… 그런데 그것도 사실 다 케바케 아니겠어? 악하게 살다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수도 있고 게으르다가 부지런하게 살수도 있고… 그러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
나는 이런식으로 말하고 싶어. 사람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어. 변해야 할 부분은 고치고 싶다거나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이겠지. 변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 같은 부분이겠지. 모든 부분을 다 고치고 바꿔버린다면 그건 과연 나일까?
그러니까 내가 나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거야. 너무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바꾸려고 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일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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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기준이 사람의 기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진다는 생각이 들어.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은 나를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이익을 볼지를 생각하는게 이성적인 거야. 그리고 남을 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감성적으로 보겠지.
반대로 나 자신의 이익보다는 모두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게 감성적으로 보일테고 세상의 규칙과 옳고 그름을 이성적인 가치라고 생각하겠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나를 위하는 사람도 세상을 생각할테고 세상을 생각하는 사람도 나를 위할테니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준, 생각, 가치에 따라서 이성적, 감성적이라는 표현이 완전히 정반대로 달라진다는 거야.
간단하게 말해서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서 물질적으로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지는게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세상의 이치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이 세상은 경쟁이나 남을 밀어내고 내가 올라가야 하는 부분도 있을테고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 부분도 있을 거야. 그런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부분에서 남을 죽이고 나만 살겠다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아. 또한 그것은 멍청한 생각이기도 하지. 그렇게 누군가를 죽여서 내가 살아남는다면 그 죽는 대상이 내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최대한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경쟁을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말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능하고 똑똑한 소수가 경쟁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적인 답이 맞겠지. 그런데 그렇지 못한 다수가 자신이 소수에 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며 남을 죽이려고 하고 밀어내려고 하고 혐오하는 꼴은 정말 한심해. (인종차별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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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냐 재능이냐도 똑같은 것 같아. 결국 재능과 노력 둘 다 필요하거든. 어떤 것에 더 중점을 두고, 가치를 두고 살아갈 것이냐에 따른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보면 노력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아보이잖아? 그런데 사실 난 오히려 노력에 가치를 두는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 노력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그렇게 못하면 좌절하고 세상에 대해서 불평 불만만 생길 것 같거든.
나는 타고난 재능이 더 중요하다고 봐. 그런데 이 세상은 단순하게 “이거 하나 잘하면 이 직업에서 성공한다.” 그런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아주 오묘하게 뒤섞여있거든. 결국은 내가 어떤 재능을 타고났는지 아무도 몰라. 나 자신도 몰라. 또한 재능을 알아낸다고 해도 그것을 세상에 어떤식으로 발휘할지도 아무도 몰라. 내가 찾아내고 개발해내야만 하는 거야.
나는 내 재능을 찾아내는 노력, 그것을 어디에서 발휘할지를 찾아내고, 내 스스로 만족할 곳을 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결국은 우리는 노력을 하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노력만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든지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나와 세상을 알아가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야.
사실은 그말이 그말이야. 노력을 더 비중있게 생각하는 사람도 다 재능을 전부 무시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닐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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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 마찬가지야. 보수는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것이고 진보는 같이 걸어가길 바라는 거야. 서로의 개념 자체가 다른 거야.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의 차이가 아니고 가치관 자체가, 틀 자체가 완전히 다른 거야.
그렇다고 그 둘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거든? 둘 다 적정한 선 안에 있으면 둘 다 문제가 되지 않아. 그런데 어느쪽에 더 가치의 무게를 두느냐는 그 조그만한 차이 때문에 상식이라는 내용이 완전히 정반대로 달라질 수 있다는게 신기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