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의 뜻, 희생의 보상에 대해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 진짜 의미를 제대로 알자

많은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곱씹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누구나 더 좋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을 구분한다. 월급, 근무 환경, 노동 강도 등 여러 이유로 사람들은 직업을 차별한다.
그렇다면 이 말은 단지 허울뿐인 위로에 불과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말을 진심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사회에 대한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청소부와 건설노동자들: 이 사회의 기둥

청소부나 건설노동자들은 환경이 열악할 뿐,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들 없이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들이 단 하루만 수거되지 않아도 길거리는 금세 쓰레기로 뒤덮이고,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결국 내가, 혹은 당신이 그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고 누리는 삶의 기본을 만들어준다.
왜 그들이 무시당해야 하는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이런 필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직업으로, 학력으로, 사회적 지위로 무시하는 사람들은 사회악이다.
이들이야말로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부모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직업에 대한 편견을 심어준다.
그러나 모든 아이가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고, 모두가 최고 학벌을 가질 수도 없다.

결국 누군가는 중소기업 직원이 되고, 누군가는 청소부가 된다.
이 과정에서 “공부를 못했으니 실패했다”는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주는 부모들이 문제다.

그 결과는 뻔하다.

  •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긴다.
  • 자신을 패배자로 정의하며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 다수가 불행해지고, 결국 사회 전체가 불행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밝지 않다.


시스템은 개인과 국민이 바꿀 수 있다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사회 시스템 탓만은 아니다.
그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국민의 몫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공부하고, 부모들은 학원비로 허덕인다.
정작 학원만 돈을 벌고, 아이들은 공부한 내용을 사회에서 쓸 일이 없다.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깨려면 개인이, 국민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부는 개인의 선택과 노력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공부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사람들만 하면 된다.
그것을 사회가 보상해줄 필요도, 강요할 필요도 없다.

왜 개인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한 희생을 사회가 보상해야 하나?
수능이라는 제도도 하나의 성공하기 위한, 등수를 나누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들이 사회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현재에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다.


어릴 때 공부를 안 한 것, 비판받을 이유가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일에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는지다.

사회는 특정 집단의 희생과 노력을 보상해줄 의무가 없다.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변화는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이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사회는 계속 불행을 반복할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우리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더 이상 무시하지 마라. 더 이상 방관하지 마라.
모든 직업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 기둥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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