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출산률이 낮은 이유

1.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돈 없이 의지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데에 필요한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투자 대비 보상이 엉망이다. 자식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자식이 먹고 살만해도 나를 돌봐준다는 보장도 없다.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식들에게 버려진 노인들의 비참하고 처참한 삶…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높은 노인 자살률…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내가 뉴스에 나오는 저 비참한 노인처럼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아이에게 “나는 나의 노후 준비를 위해 너를 고등학교까지만 지원할 것이고 학원도 보내지 않겠다.” 라고 말한다는 건 어찌 보면 학대로 보일 수도 있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학원에 가고 대학까지 지원을 받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지원을 받아도 취업을 한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고등학교 졸업 후에 완전히 지원을 끊겠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뭐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준다고 생각할 수 있고, 아이가 일찍부터 철이 들어서 혼자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부모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며 삐뚤어져서 큰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을 충족할 만큼 아이에게 금전적인 투자를 할 수 있고 내 노후 준비도 스스로 해야 할 수 있는 사람만 아이를 가지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만한 능력과 여유가 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것이다.

또한 설령 내가 내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아이에게 헌신하고 희생해서 최선을 다해서 키운다고 해도 아이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나처럼 힘들고 고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삶을 내 자식도 이어서 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자식 키우는게 편한 시대가 있었을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시대는 또 얼마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사회의 기준을 충족하기가 너무 빡세다는 것이다. 그 보편적인 사회의 기준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덜 벌고 덜 쓰면서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있다고 해도 내 배우자와 아이가 나와 생각이 같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안일하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선택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나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말이다.

2. 할게 너무 많은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이건 그냥 뇌피셜일 뿐인데(사실 1번도 뇌피셜이지 뭐…) 예전에는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사는게 보편적이었다면 요즘은 그것 말고도 할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밖에 나가서도 할 것은 많고, 가만히 집에 틀어박혀서도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니 즐길 거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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