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씨와 페미의 착각

더 많이 불편해할수록 더욱 차별에 민감하고 옳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같다.

보통 사람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면 그게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차별을 보는 눈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특히 기자들이 그런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러운 이유로 기존의 것들을 다 차별적인 것으로 정의하려고 든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불렀다. (어쩌면 그 프로불편러들이 피씨와 페미에 들어가서 차별 해소 운동을 한다며 차별 해소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의 옷을 입고 악플을 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결국 명확한 선은 없다. 정도도 없다. 그저 불편해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더 세상을 위한 방향이라는 아주 위험한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대인을 학살한 사람들도 그들 스스로에게는 정당하고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페미와 피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스스로 옳다는 생각에 빠져서 죄가 없는 것들에 폭력이나 학살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꼭 그것이 물질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

차별 해소의 핵심은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것이다. 그게 핵심이다.

그런데 차별적으로 보일수도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없애면 차별이 없어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큰 착각이고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뭐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없애자는 것이다. 그건 너무 무섭고 위험한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다. 살색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고 살구색을 쓰자는 얘기들이 있다. 살색은 차별적인 단어인가? 살색이라는 단어를 없애면 차별 해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일까? 그것은 극단주의자들이 하는 극단적인 생각일 수 있다.

동양인에게는 살구색이 살색이고 흑인에게는 검은색이 살색이고 백인에게는 흰색이 살색일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서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피부색의 친구들끼리 서로 농담을 주고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진지하고 무서운 시선으로 살색에 차별적인 단어라는 색을 입혀서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 나는 그것이 정말 무섭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위험성, 위험이 있을 가능성, 차별을 할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으로 그것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다면, 에이즈 때문에 게이는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옳다.

*****내 결론은 단순하다. 정말 엄밀하고 명확하게 위험한 것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기준은 애매하다. 그런데 진짜 핵심은 애매함에 있다. 명확함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극단주의이다.

*****다시 간단히 말해서 내 주장은 최대한 차별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내버려두자는 것이다. 아무거나 다 죽여버리고 총을 난사하지 말자는 것이다.

This entry was posted in 잡담 and tagged , , , . Bookmark the permalink.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