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식용개 발언 + 개고기 찬성, 반대, 합법화에 대한 내 생각

한마디로 개고기 찬성 반대를 질문하는데 식용개가 있지 않냐는 대답은 대답이 될 수 없다. 개고기를 반대한다면서 식용개는 먹어도 괜찮다는 소리인가? 개고기를 찬성한다면 굳이 식용개라는 차별적인 발언을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 식용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단지 식용으로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지. 먹어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의미로 허락을 받은 종이 아니다.(그런 종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식용으로 정해진 종이라고 해서 다른 종보다 멍청하다거나 뇌가 없거나 하지 않다는 말이다. 똑같은 생명이다.

식용으로 불리는 종도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키우면 애완동물이 되는 것이고, 대다수가 애완동물로 키우던 종도 키우기 쉽고 맛있고 살이 많아서 먹기 위해 키우기 시작하면 식용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어도 되는 개가 있고 먹어서는 안 되는 개가 있다는 개념 자체가 인종차별과 똑같다. 노예로 부려져도 되는 인간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남을, 다른 인간 모두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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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에 대한 나의 입장은 단순하다. 결국 다수결과 다수의 인식이 흘러가는 방향대로 법이 만들어지겠지. 지금처럼 개고기를 인정하는 상태로 유지될 수도 있고 개고기가 불법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 아주 근본적으로는 개고기를 금지할 명분은 없다. 소도 돼지도 닭도 생각보다 멍청하지 않다. 오히려 개보다도 모성애가 지극하고 똑똑한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법적으로 어떤 결론이 나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옳고 그름이라는 것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법은 인간 다수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에 의해서나 사회가 발전하거나 유지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일테니까.)

예를 들어 살인도 마찬가지다. 살인이 왜 나쁠까? 살인은 나쁘지 않다. 단지 인간들이 같이 모여서 살아갈 때 사회의 유지나 발전에 방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불법일 뿐이다. (세상에 아무도 없고 단 둘만이 살고 있는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인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다수가 개고기 불법을 찬성해서 법이 통과된다면 그때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자유의 영역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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