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공감하기 쉬운가의 문제인 것 같다.
채소도 생명이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 고통에 대해서 인간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채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채소가 고통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괜찮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물은 어떤가? 우리 인간도 동물이다. 고통을 받으면 비명을 지른다. 빨간색의 피를 흘리고 몸부림을 친다.
동물도 인간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빨간 피를 흘린다. 그래서 채소를 죽이는 것보다 훨씬 더 동물의 아픔에 공감하기가 쉬운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개고기를 반대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나도 처음에는, 아니 지금도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닭, 소, 돼지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어쨌든 내가 가족처럼 개를 키우고 있기 때문에 개의 죽음,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픈 것이다.
전에도 많이 썼지만 정답은 다수의 사람들이 힘으로 법과 규칙을 만드는 것인 것 같다. 다수가 개고기 불법에 찬성하고 법이 만들어지면 그게 상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꼭 다른 생명의 고통에 공감해야만 옳고 선한 것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그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불편함에 대해서도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해결해나가는게 사회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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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닭, 개,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닭을 키워보면 닭도 절대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 집과 영역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오자마자 바로 알아챈다. 그리고 수탉은 맛있는 것이 있으면 소리로 암탉을 불러서 먼저 먹이는 스윗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닭고기를 먹지 말자고 시위를 하진 않는다. 또한 나도 간혹 닭고기를 먹는다.
나는 위선자일까? 나는 이 문제는 분리해서 볼 수 있는 사람과 분리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처럼 분리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도 결국 분리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의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만 안 아프고 나만 안 다치고 나만 안 뺐기면 그만 아닌가?
왜 굳이 힘이 쎈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함부로 때리고 괴롭히고 빼았으면 안 된다는 약자를 위한 법을 만들었을까? 그런 법이 만들어진 것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감정적인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그런 참견의 마인드? 남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분리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도 법과 사회의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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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요즘에는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은 법도 초월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서 과연 정의나 상식이라는게 진짜 존재하긴 했었는지 의심이 들기는 한다. 진짜 권력자들이 국민들을 통치하기 위해서 만든게 법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난 공정, 상식, 정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 사회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옳은 방법으로 노력해서 내 능력을 키워도 다 힘을 가진 사람들한테 뺐길거라고 생각하게 되면 누가 옳은 방법으로 노력하려고 할까?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힘을 가지려고 하지 않을까?
다들 사기만 치고 나쁜짓만 하려는 사회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너무 노골적인 현재의 윤석열 정부는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 외교, 안보 등등의 실물로 보이는 상황이 처참한 것도 처참한 것이지만, 그것 이외에도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아주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