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고찰
물체의 정체성과 인식의 문제
물체의 정체성은 결국 그 물체를 바라보는 당사자의 인식과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테세우스의 배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누군가가 “이 배가 테세우스의 배가 맞다”고 믿는다면,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로 받아들여진다. 반면에, “이 배는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된다.
사회적으로도 이 원칙은 유효하다. 다수가 “맞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곧 사회적으로 “맞는 것”이 된다. 결국, 정체성이나 진실은 주관적 인식과 집단적 동의에 의해 정의되는 셈이다.
나라는 존재의 정의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정의될까? 나는 나 자신이 오직 나에 의해 정의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내가 나를 고정시킬 수 있을 만큼의 명확한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다.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기억의 파편들뿐이다. 게다가,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 없다. 결국,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것은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기억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아의 변화와 분리
나는 이 세상을 인식하는 나라는 자아가 고유하다고 믿는다. 이 자아는 이 세상과 완벽히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다. 하지만, 이 자아가 단 하나의 고정된 존재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의 경험과 생각이 변하면, 자아도 변한다. 새로운 경험과 사고가 기존의 자아와 결합하며 또 다른 자아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의 자아가 계속 갈라지는 것과 같다.
자아의 절대적 주관성
결국, 나라는 존재는 절대적으로 나의 관점에서만 정의된다. 내가 나를 정의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 영역은 다른 사람이나 과학, 객관적 증거로는 입증할 수 없다. 설령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이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의 본질이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이며, 이 영역은 외부의 어떠한 힘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내가 단 하나의 고유한 존재는 아니지만, 나는 분명히 나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결론: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내 자아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그 정의는 오직 나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의 경험, 생각, 기억의 파편들이 나를 구성하고, 이 모든 것이 결국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변화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며, 나를 정의하는 것이 내 스스로의 몫임을 깨닫는다. 이 주관적인 진실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핵심이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 또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간다. 이것이 내가 존재하는 방식이고, 나를 바라보는 유일한 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