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살에 대해서 너무 편하게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삶은 소중하다.
삶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내려놔라.
너의 행복에 집중해라.

또는 자살을 열심히 욕하지.
한심하고 무잭임한 짓이다.
자살한 사람보고 바보같다.
현실에서 도망친 비겁자다.

이런 말들로, 유튜브 영상으로 그들이 살기를 바래.
단 한가지 답으로 그들이 변화하기만을 바라는 거야.

다 상황이 다르고 필요한 해답, 도움이 다를텐데 말이야.

자살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 것을 몰라서, 양심이 없어서 아무런 책임감, 죄책감 없이 자살할까?

나는 우리가,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그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거야.
막는다기보다는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조금 줄여주고 도와준다는 말이 맞겠지.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이런 생각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지.
어쨌든 그들을 생각해서 이런 생각도 나온 것일테니까.
하지만… 역시 너무 편한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좋게 보이지 않더라.

만능의 돌? 마법의 단어? 만능 해결책? 그런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여.

그것을 빗대서 스토리로 표현?
어떤 것을 구하면 (퀘스트?) 이 세상의 모든 자살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저주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불행하지 않아지는게 아니잖아.
고통스러운데도 자살하지도 못한다면 온전히 그 고통을 받아야만 한다는 거잖아.

아니면 주인공이 사라지면 이 세상의 자살도 사라진다?
(그건 더 끔찍한 거라니까?)

그냥 되는대로 살라는 거네
사실 그것 말고 답이 있을 수가 없어.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거, 꼴리는대로, 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을 쫓으며 즐겁게 사는 것. 그것 밖에 없어.
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지.
외부에서? 또는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면 안 돼.
그런 건 없거든.

“안다”라는 것을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힘들다고 하면 힘들 수도 있겠다고 인정해주고 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게 아닐까?

사람들은 이렇게 어떻게든 살 이유를 만들어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누굴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돕고 있는게 아니야.
우리가 그들에게 선심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라니까? (그런식으로 생각할거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둬. 그거랑 다를바도 없어.)
우리를 위해서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거야.

힘들다는 것 자체가 문제고 그것을 도와야 하는 것이지.
자살이라는 행위 자체는 힘든게 아니라니까?
그냥 도망치는 행위인 것이지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자살이라는 행위를 막는게 핵심이 아니라는 거야.
자살할만큼 힘든 그 “이유”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야 해.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여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삶의 방향을 다시 잡고 개선시켜야 할 여지,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도 자살을 하고 있어.
그것에서 슬픈 것은 자살, 사람이 죽는다는 그 자체가 아니고 자살을 할 만큼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아닐까?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라는 말.
자길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자신이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는 거야.
그딴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할 생각 하지 말고 그사람한테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할 생각을 하란 말이야.

그러니까 도움을 줄 여유가 없는 사람들한테까지 남을 도우라는 얘기가 아니야.
결국 가족중에 누군가가 자살을 한다면 후회할 사람들, 주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자살을 막고 싶은 사람들은 편한 길만 찾으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또는 잘못된 방법으로 오히려 상처를 주지는 말라는 거야.

정말 열심히 도왔는데도 자살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그런데 정말 그랬냐고…
지금 사회가 그러고 있냐고…

(인디언식 기우제와 연결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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