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객관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행복하지 못하고 객관적인 결과나 돈, 명예가 충분해도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경우가 있잖아.
세상의 기준과 내 기준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는 했었는데 이전까지는 세상의 기준보다는 내 기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어차피 이미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준선을 알고 있고 느끼고 있어.
중요한 건 어떤 것에 더 기준을 두느냐가 아니야. 내가 계속 내 기준을 집착했던 이유가 사람들과의 비교를 하면서 내 스스로 휘둘리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 상대적으로 초라하다고 느끼니까 그것을 피하거나 견디기 위해서 개인적인 기준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성과가 나와도, 내 개인적으로 만족해도 휘둘리면 행복할 수 없어. 중요한 건 내가 휘둘리지 않고 내 기준을 잡는거였어. 개인적인 기준 안에서만 갇혀 있어도 안 되고, 너무 세상의 기준에 얽메이고 휘둘릴 필요도 없다는 거야. 나는 그냥 이 세상의 객관적인 기준 안에서 내가 만족할만한 어느 정도의 선, 그리고 내 스스로의 기준 안에서 만족할만한 정도의 선.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내가 만족할만한 기준을 잡고 거기서 우뚝 서 있어야 한다고!
–
똑같은 소리인데 다시 정리를 해보자면 남과 비교했을 때 내가 높은 등수에 드는 것을 원하는지, 아니면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이미 나는 그 답을 알고 있어.
내가 만족할만한 등수와 내 만족하는 결과물의 기준을 경험을 토대로 바로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거야.
1등을 안 하고 못 베기면 무조건 1등을 하려고 해야할테고, 중간쯤에 만족하면 그 정도 수준을 지키면서 또다른 내가 만족할만한 가치들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거야.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할만한 나만의 기준을 확고히 잡고 그것이 휘둘리지 않는 거야.
아무리 그 사이에서 적절한 기준을 잡아도 주변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행복할 수가 없어.
그 기준이라는 것은 당연히 세상의 상대적인 기준도 포함되는 것이고 내 개인적인 만족도 포함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내가 객관적인 세상의 기준에서 떨어져서 그부분이 결핍되어 있다면 행복할 수 없어. 반대로 개인적으로 불만족스럽고 불행하다면 역시 행복할 수 없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만족할만한 그 기준선에 도달하기 위해서 더 활발하게 움직여야만 해.
–
결국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는 거야. 내가 만족하도록 만들면 그걸로 충분하고 그게 전부라는 거야. 나만 좋으면 좋다는 소리가 아니고 내가 만족하는 정도 안에 대중성의 정도도 이미 포함이 되어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존나 만족하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냈어. 진짜 나 스스로 존나 만족해. 그런데 그게 돈이 안 되잖아? 그러면 난 거기서 결정을 내려야 해. 그 일을 접을 것인지 아니면 취미로 남길 것인지… 대중성에 더 비중을 둔다? 그건 불가능해. 그냥 난 타고나지 못한 거야. 내가 만족하는데 남들이 전혀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건 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야 한다는 거야.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는 거야. 그런데 나는 인기가 없으면 어떻게든 흠을 잡았던 것도 같아… 흠… 고칠 부분이 보인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지. 그게 맞네. 그 말은 결국은 대중성의 정도가 확실하게 정해진게 아니고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건가? 그러니까 대중성은 하나의 요소 중에 하나가 아니고 개인적인 만족에 포함되는, 버무러지는 요소인 건가?
결국 계속 실패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기도 하고, 대중성을 훨씬 더 신경써보기도 하고 별짓을 다 해봤지. 그래서 내가 대중성을 노린다고 노려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혀 대중성을 신경쓰지 않느냐? 그것도 아니거든. 적정한 선을 계속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계속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런데 결국 내가 왜 인기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도달하면 (나는 정말 만족스럽고 대중성도 있을 것 같은데 인기가 없는 거야.) 그때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거겠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몇년 해보고 안 되면 단념하라고 하는 거구나…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이해했네)
대중성과 개인의 만족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면 그건 천재지. 창작을 포함해서 모든 사회적 행위는 결국 말을 건네는 거랑 똑같은 거야. 그래서 가상의 단 한사람에게 보여준다는 식으로 생각하라는 거겠지.
–
결국 대인관계에서 예의처럼 일에서 중요한 건 그 일에 대한 열정인 것 같아. 열정이 있으면 결과가 어떻든 또 도전할테고 결과가 나빠도 또 하고 싶을테니까. (그러니까 하고 싶다는 것 자체가 아주 좋은 것이고 특히나 그것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잘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니까.)
새로 시도해보고 싶은 부분들이 생길테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점들이 보일테고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겠지. 미련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마찬가지일테고 생활패턴이나 그런 것과도 맞아야겠지. 그러니까 내가 계속 하고 싶은게 생기고 욕심이 생기고 그런다면 일이든 취미든 더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야.
현실, 돈은 따로 생각할 부분이지. 그건 지가 알아서 할 일이지. 다시 말해서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웹툰을 포기하고 취직을 준비하든 뭘 하든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꼭 이게 맞다 이런 건 없다는 거야. 난 돈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냥 알바나 하면서 살거야. 혹시라도 수입이 늘어난다면 그건 웹툰이나 블로그가 더 잘 되는 거겠지. 뭐 또 다른 하고 싶은게 있으면 그걸 할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결국은 지가 지 꼴리는대로 알아서 살게 되어 있어. 돈 많이 벌고 싶으면 어떻게든 돈을 추구할 것이고 나처럼 그냥 당장 꼴리는 거, 돈 안 되는 것만 하면서 살수도 있는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돈이랑 개인적인 만족은 비교대상이 아니었네… 결국 다들 각자 자기가 꼴리는대로 살텐데 굳이 뭐가 더 중요하네 비중을 어디에 더 둬야 하네 그딴 걸 정의하려고 하고 싸우려고 하고 고민을 하냐는 거야. 지 밥벌이 지가 알아서 하겠지 나중에 후회하든 어쩌든 그것도 지가 결정한 건데 뭐가 문제야.
자주 했던 얘기고 여기 주제와 약간 다른 얘기인데 꼴리는대로 산다는 얘기가 뭐냐하면 결국 현실적인 삶을 사는 것도 스스로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러니까 결국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다 자기가 꼴리는대로 살고 있어. 괜히 다수가 현실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해서 괜히 휩쓸리지 말라는 거야. 나는 어차피 현실적으로 살려고 해도 못해. 나는 내 기준을 유지하면서 사는게 가장 현실적인 삶이기도 하다는 거야. 그게 가장 이 세상에도 가치있을 수 있다는 거야.
또한 너무 힘을 주려고 하지도 말고 너무 힘을 빼려고 하지도 마. 남 신경쓸 것 없어. 느려도 되고 힘 빼도 돼. 내 페이스대로 가는게 나에게는 가장 빠른 길이야. 인생은 같은 지점에서 시작해서 같은 지점에서 끝나고 같은 시간이 주어지는 마라톤이 아니야. 나는 내 페이스를 유지해야만 가장 가치있어질 수 있는 거야. 행복할 수 있고…
정리하면 내가 만든 것을 남들이 싫어하면 어쩌지? 더 안정적이고 대중적인 건 없나? 이런 고민은 막연하다는 거야. 물론 내가 대중과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해서 조심할 것은 조심하기도 하고 더 비중있게 다룰 것을 정하게 될수도 있지. 또한 통계같은 것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은 다 통계, 반응일 뿐이야. 결국 그런 것들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어.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기준은 나의 기준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대중들의 반응으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막연하다는 거야. 그 막연한 것을 기준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롤을 예로 들면 메타라는게 있어. 매번 패치때마다 어떤 챔피언이 좋고 승률이 높은지를 파악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하거든? 그걸 하지 말고 오직 내 생각대로만 살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 현실을 내식대로, 내 방식대로 이해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냥 유행이고 승률 높다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흉내낸다고 되는게 아니라는 거야. 다시 말해서 현실을 보고 이해해야만 해. 나 혼자 살아가는게 아니고 내가 이 세상이랑 같이 살아가고 이 세상에게 영향을 받고 주며 살아가는 거잖아. 하지만, 결국은 내가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대로 이해하면서 주도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거야. 굳이 메타를 따라가느냐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챔피언만 하느냐를 따진다면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챔피언을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 내가 이해 못한 건 못하는 거야. (물론 프로게이머라면 정말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챔피언을 못한다면 그 길이 안 맞는 것일 수도 있지.) 그러니까 어설프게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려고 하면 이도저도 아니라는 거야. 분명히 이 세상과 소통해야 하고 이 세상을 알아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야 한다는 거야.
간단히 말해서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거야. 남이 뭐라고 하거나 남이 만든 것이 좋아보이고 예뻐보인다고 따라하고 흉내내려고 하다가 휘둘리면 내가 정말 잘하고 하려는 것,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간과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야. 그런데 이게 또 케바케야. 좋은 것, 잘 만들어진 것, 완성도가 높은 것을 보고 따라하면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거든. 그리고 그런 특성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어.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너무 쉽게 휘둘리는 타입이라서 더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비중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지.
핵심은 앞에 말했듯이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거야. 잘 만든 것을 보고 따라하고 배우고 다른 사람과 교류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고, 그러면서도 휘둘리지 않는다면 아무 상관 없지.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무 영향을 잘 받고 잘 휘둘린다면 휘둘리지 않도록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야. 더 나다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야. 누군가는 외부의 영향을 좋은 방향으로 이용해서 아주 빛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또 누군가는 외부의 영향 때문에 이색도 저색도 아닌 흐리멍텅한 색이 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또다른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가?를 고민한다고 치면 결론은 내가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으면 그뿐이야.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 요소가 있지. 내가 이 세상의 시선이나 기준을 완벽하게 배제하고 오직 나의 기준에만 집중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이 세상의 기준도 최소한으로 충족해야지 내 스스로도 내 삶에 만족할 수 있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