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신이라는 존재가 한 개인을 신경쓴다거나 의미있게 바라본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이 인간처럼 사람마다, 생명의 종류에 따라 개별적으로 신경을 쓴다면 그순간 그는 신이 아닌 그저 힘이 좋고 초능력이 있는 사사로운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는 이유는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의 돌은 인간에 비해서 무한대의 시간을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사실 돌일 뿐이다. 결국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돌처럼 무생물이 되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을까? 결국 신이 완전한 존재이려면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돌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아무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신이 특정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순간 그것은 신이 아니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신이라면 나는 애초에 신을 섬길 필요성을 못느낀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존재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간계에 영향을 끼치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신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신이 절대적 존재라면 인간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신이 사사로운 존재라면 그 신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우리의 운명은 모두 정해져 있고 거스를 수 없다. 알수도 없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알게 된다면, 그것 조차도 운명인 것이지.) 그러니까 “내가 성공할 운명이면 놀아도 성공한다거나 실패할 운명이니까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생각 자체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알수가 없으니까. 내 생각이나 노력이나 의지나 판단, 심경의 변화 등등 그 모든 것들 자체가 정해져있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노력해서 성공할 운명이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할 운명이라는 것이다. 내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과만 정해져 있는 그런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인간의 삶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표현해서 신도들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고, 일반인들에게 개신교를 전파하고 참견하라고 시킨다. 성경의 내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개신교 신도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실제로 그렇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정말 개신교에서 말하는 천국이 존재한다고 치자. 개신교 신도들만 존재하는 그곳이 과연 진짜 천국일까?

This entry was posted in 0 잡다한 잡담 and tagged , . Bookmark the permalink.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