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테러, 무슬림, 표현의 자유와 어두운 골목길과 짧은 치마

최근에 프랑스에서 무함마드 풍자 만화, 무슬림, 살인, 테러와 관련해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일단 내 생각은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직접적인 문제가 없는데도 가능성을 얘기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설령 누군가를 모독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김어준은 일본에서 유관순을 조롱하는 만화를 그리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난 그것도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과 별개로 표현의 자유는 되도록,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도 사실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과 동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표현의 자유라는 말의 핵심은 사회나 법적으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일본의 어떤 사람이 유관순을 조롱하는 만화를 그렸다면 우리나라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을지언정 그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리며 한 행동에 대한 사람들 각자의 반응도 자유인 것이다. 옳고 그름은 개개인이 판단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서 다수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프랑스에서 무슬림 종교를 비하하는 내용을 표현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법적으로는… 하지만 그로 인해서 생긴 문제가 그들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테러를 옹호한다거나 그런 잘못을 했으니 테러를 할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테러가 문제라는 것과 테러 집단을 자극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프랑스에서 먼저 테러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종교의 믿음과 실제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같은 위치에서 볼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재 테러나 그런 행위들을 보면 종교를 위해 남을 죽이기도 하고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도 전혀 두려워하는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용납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런 집단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불법이 아니면 무슨 행동이든 해도 되는 자유가 있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조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게 어두운 골목길과 짧은 치마이다. 여성들에게 어두운 골목길을 조심하라거나 너무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라는 말을 하면 성범죄가 일어나는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고 말하는 거냐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실제로 “어두운 골목길을 함부로 다니고 짧은 치마를 입었으니까 너는 당해도 싸.”라는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도 어두운 골목길에 갔다가 강도를 당할 수도 있고 성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네가 문제가 발생할 여지를 만들었으니까 너에게도 탓이 있다. 그러니까 범죄자의 죄도 줄어들어야 한다”는 식의 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조심하라는 말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후자의 의도와 말을 전자로만 받아들이면서 발끈하고 성차별적이라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집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동네 사람들한테 모두 다 알려준다거나, 문을 잠그고 다니지도 않으니까 주변 지인들이 도둑 조심하라고 말해주는데 왜 도둑을 옹호하냐고 따지는 꼴이라는 것이다. 조심하라는 말은 말 그대로 조심하라는 것이다. 도둑을 옹호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문을 안 잠그고 다니는 것도 자유이다. 하지만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도 자유이며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무슨짓이든 해도 되고 아주 조금이라도 내 행동에 참견을 하면 모두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건 자유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게 아닐까? 스스로의 자유에 대해서 너무 절대적으로 해석하고 있는게 아닐까?

가장 핵심은 그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설령 그가 조심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큰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으이그 내가 그래서 조심하라고 했지? 넌 당해도 싸다. 네가 뭘 잘했다고 힘들어하냐?”라고 말하는 건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행동이다. 그것은 사이코패스나 할만한 짓이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의 상처를 후벼 파는 짓을 하는 것이다.

또한 성범죄와 집에 도둑이 드는 것은 다른 부분이 있다. 도둑이 들면 잡아서 처벌하고 도둑질한 것을 되돌려 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성범죄를 당하면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할 자유가 있으니까 그렇게 행동하겠다? 그러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자유가 맞으니까. 하지만 무함마드 풍자 만화든 어두운 골목길을 다니는 것이든 자유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내던지는 것은 그냥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들 의미있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무함마드 풍자 만화를 그려서 올린 사람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멋진 행동을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유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행동은 좀 더 세상에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서 해야 하는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을 모욕하고, 어두운 골목을 들어가는 것이 정말 자유를 수호하는 멋진 행동이냐는 것이다.

어쨌든 다시 프랑스 테러로 돌아가서 결국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이지. 남을 함부로 비난해도 되는 것을 자유라고 보는 것은 억지스럽다. 그러니까 프랑스에서 무슬림을 비난한 것이 정말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단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무조건 해도 되고 해야만 한다, 허용해야만 한다는 논리는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고 조심해야 하고 조심할 수 있는 것은 조심하는 것이 당연하고 남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함부로 건들지 않는 것이 예의다.

길거리에서 말싸움을 하다가 폭행을 당했는데 맞은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폭행의 처벌이 낮아지는 건 아니다. 당연히 폭행을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다. 하지만 먼저 시비를 건 사람이 나는 시비를 걸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답은 아니다. 당연히 테러는 사라져야 한다. 과격한 종교단체 문제도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하는게 맞다.

이번 사건은 애초에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끼지 않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라는 건 약자가 다수나 사회나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고 존중받고 보호받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그런게 아니다. 아무도 자유를 억압하지 않았다. 그저 자유를 오용, 남용 했을 뿐이다. 쓸때없이 시비를 건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테러를 할만큼 잘못했다. 테러를 당해도 싸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을 모두 없앨 것이 아니라면, 같이 지구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외치기 이전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한게 아닐까?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자유는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에서 허용되는 말이라고 해서 모두 옳은 말은 아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욕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욕을 할 자유는 자유는 보호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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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라는 말은 그냥 조심하라는 말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자체가 어쩌면 참견이고 자유를 침해당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자유를 침해하고 성범죄자를 옹호한다는 식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탓을 하고 책임을 묻자는게 아니고 조심하라고 조언을 해주는 것을 참견이나 자유 침해나 탓을 하려는 것으로 몰고가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을 내가 무슨짓을 하든 남들은 절대 1도 간섭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의 자유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간섭을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남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돕는 것조차도 사실은 간섭이다. 그 간섭이 부정적인 것인지 긍정적인 것인지는 명확히 구분될 수 없다.

내가 법이 정해놓은 기준 안에서 무슨짓을 해도 되는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면 남에게 참견하는 것도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유를 오용해서는 안 된다.

싼게 비지떡이다라는 말도 있고 사기 당하는 사람들도 멍청해서가 아니고 오만하고 욕심부려서죠. 도박에 빠지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사실 적정가격이나 시장가격보다 살짝 비싸다고 해서 다 사기가 아닐거라는 생각도 안 듭니다만, 어쨌든 너무 싼 것을 혹해서 사는거 분명히 욕심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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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문을 꼭 잠그고 다니자. 어두운 밤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골목은 피하자. 이런 말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결국 그 당연한 말을 어떤 의도로 하는지가 갈리는 포인트라고 본다.

피해자가 생겼는데 그 피해자를 탓하기 위해 그 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고, 피해가 생길 것을 걱정해서 미리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조심하라고 하는 말조차도 왜 가해자 편을 드냐면서 따지는 것은 이상하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위험을 대비한다. 조심하라는 말조차도 가해자를 편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로 인해서 오히려 더 피해자가 늘어날수도 있는 것이다.

가해자, 범죄자를 욕하고 탓만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법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서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당장 실현된 것도 아니고, 언제든 범죄자들은 법의 빈틈을 찾아낼 것이다. 결국은 개인이 조심해야 할 부분은 항상 생기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부분을 굳이 말해야 하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당연한 부분을 말하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참견하고 간섭하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면 조심하라는 말은 나쁘지 않다.

20231030/
정리하면 이런 것이다.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났다고 치자.

그러면 총기를 규제하자는 목소리가 총기 난사한 사람의 책임을 줄여주고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주장이 되는 것일까? 피해자들에게 왜 총기 규제에 찬성하지 않았냐고, 그러니까 총에 의해 피해를 입어도 싸다고, 피해자를 탓을 하게 되는 발언일까?

그러니까 밤길에 혼자 돌아다녔으니 성폭행을 당해도 싸다는 말이 비정상적인 말이듯이 밤길에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이 성폭행범을 두둔하는 거라는 말도 비정상적인 해석이라는 것이다.

밤길에 혼자 다니지 말고, 밤길은 조심하라는 그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두 부류 모두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뻔한 말을 왜 하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

밤길 조심하고, 오토바이 조심해서 타고 그런 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고 조심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조심하라는 말 자체를 내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고 범죄자 편을 드는 거라며 의도적으로 더 조심하지 않으려는 경우 말이다.)

그러면 그런 조심하라는 잔소리 같은 뻔한 말을 사회에서는 대부분 한다는 것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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