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한 집단, 모임인 것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을 위한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 시위를 하고 파업을 했던 의사나, 택배차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도 집 앞까지 배달해주기를 요구하는 세종시 아파트 주민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다. 인권은 여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성만 차별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오직 여성의 인권에만 집중하고 행동한다. 그것은 차별 해소가 1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은 “여성”이라는 성별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이익을 위한 단체이고 그 카테고리 안에 차별 해소가 들어가있을 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스스로 차별 해소 운동, 인권 운동이라는 것을 가장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오직 여성의 이익을 위한 단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사람들에게 차별 해소를 위한다며 거창하게 자신들을 포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단체가 있다. 노동자를 위한 단체, 자연보호를 위한 단체 등등 그런데 그런 단체를 지지하지 않으면 나는 노동자에게 차별적인 사람인가? 환경을 오염을 지지하는 사람인가? 그런데 페미니즘은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으면 차별주의자라는 말도 안 되고 극단적이고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쒸우려고 한다. 그런 것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차별 해소를 위한 집단으로 포장하고 싶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페미니즘 지지자는 그런 말을 한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여성이 차별받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그것이 차별적인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남성도 분명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페미니즘은 그것을 문제삼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페미니즘도 차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집단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게 된다.
정말 차별 해소를 위한 집단이라면 그 누구의 시선도 들어가선 안 된다. 최대한 객관적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성별이든 이념이든 특정한 대상의 시선이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차별 해소 운동이 아니게 된다. 오히려 그 대척점이 서는 대상을 혐오하고 차별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