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차별이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한겨레 직원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을 봤다. 기사 제목에 “형님” 단어가 들어가는 것 자체가 남성중심적이고 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얘기였다. (형님 예산 뭐 이런거?) 난 그건 열등감, 과대망상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전부 여성, 남성 그리고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그건 정상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저 정치나 등등의 신문을 남성들이 주로 소비해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애초에 그것조차도 차별 때문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냥 태초에 여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차별받으며 생겨났다고 하지 그래?) 이제 여성도 그런 정치나 여러가지 사회 분야, 신문 기사에 관심이 늘어났으니(사실 페미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지 그 이외에 여성이 과연 정치나 사회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있다.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성범죄 비율을 남성이 월등하게 높다며 남성을 비하하는 페미들이 남성이 정치나 사회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신문을 많이 본다는 것은 왜 모를까?) 그냥 자연스럽게 변화해나가면 되는 부분일 뿐이지. 그것을 차별이라고, 차별의 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열등감, 피해망상, 멍청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누군가를 성별이나 그런 것으로 특혜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어떤 성별이 떠오르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 어떻게 차별이 되나? 난 이런 이상한 문제제기를 볼 때마다 정말 모든 직장, 방송, 예능에서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반반 맞춰야 한다고 페미들은 생각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여성이 더 많이 관심을 가지는 분야에서는 여성 중심의 단어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변별력을 왜 페미는 가지지 못할까?

“형님” 단어가 들어가는 건 그냥 당신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불편해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차별적인 것, 잘못된 것은 아니다. 차별이나 평등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식으로 모든 것을 다 차별이나 평등하지 않은 것으로 보면 이 세상은 너무 불편해진다. 차별이라는 단어, 평등은 조금 더 엄격하고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말해야만 진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차별없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쪽의 시선과 입장만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갈등, 분열, 차별을 더 조장할 뿐이다.

나는 당신의 그 문제제기 자체가 여성중심적인 착각에서 기반했다고 생각한다. 남성적인 단어만 나오면 반발심을 가지고 차별,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과대망상일 뿐이다. 기자들이 제목에 “형님” 넣는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은 “누나, 누님”이라고 쓰면 된다. 그러니까 문제제기를 하고 반발을 할수는 있지만 정말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인 것처럼 정의하려고 하고 쓰는 사람을 차별주의자로 몰아서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은 그 자체가 차별이자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뭐든 차별로 정의하고 몰아가는 것은 몰상식한 짓이라는 것이다. (만물 여혐설, 차별설도 아니고…)

그러니까 핵심은 이거다. 정말 차별적인 부분이고 문제가 있는 부분이라면 고치는게 맞다. 하지만 “이러면 더 좋지 않아?” 라고 생각할 부분에 차별을 들이대면서 기존에 쓰던 사람들을 차별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이다.

예를 들어 회원가입을 할 때 성별을 선택해야 하는데 보통 남, 녀로 해서 남자가 먼저 표시된다. 기본값일 때도 있다. 그러면 그걸 문제제기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별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어떤 성별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매번 싸워야 하는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이트에서는 녀, 남으로 해서 여성을 기본 선택으로 만들면 된다. 또는 랜덤으로 만들면 된다. 어떤 방식이든 틀린게 아니다. 그런데 남자가 먼저 나온다고 해서 차별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런데 페미니즘의 논리는 애초에 성별을 선택란을 없애자거나 지금까지 남성이 앞에 나왔으니 모든 사이트에서 여성이 앞에 나와야만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멍청하고 우매한 주장까지는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다.
누군가가 불편해하고 상처입는다면 내가 배려해줄 수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안 해서 타인을 배려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성적이고 배려적인 마음을 페미니즘은 이용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것을 문제제기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차별주의자라는 식의 태도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나는 내가 제목을 쓸 때. “형님 예산”이라는 단어를 쓸 자유가 있다. 나는 회원가입 사이트를 만들 때 남성을 우선으로 나오게 할 자유가 있다. 누군가 불편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 모든 것을 다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폭력적인 것이다.

나는 욕을 쓸 자유가 있다. 욕이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해서 욕을 이 세상에서 없애겠다는 식으로 타인을 협박하고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모든 것을 할 자유가 있다. 페미니즘의 주장 중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려고 드는 것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무한도전도 그렇다. 무한도전은 인기가 많기는 하지만 하나의 예능일 뿐이다. 거기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문제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지 않을 부분까지 불편하다고 차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불편하면 불편한 사람이 안 보는게 맞는 것이지. 그런식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모든 예능을 맞춘다면 결국 더 다수의 사람들이 즐거움을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예능이든 방송이든 그 무엇이든 다 자유로운 수위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자신들이 만족하는 특정한 수위 이외에는 모두 문제라고 정의하고 공격하고 자신들이 마음에 드는 수위로만 방송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페미는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차별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만이 옳다며 자신들을 지지하고 옹호하지 않으면 모두 차별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여성이고 남성이고 법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자유가 있다. 물론 그것을 비호감이라거나 거슬린다고 욕할 자유도 있다. 하지만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야말로 마녀사냥이다. 페미니즘이 성상품화, 성적대상화라며 불편해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그걸 안 입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니까라면서 안 입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남의 쓸때없는 참견, 불편한 시선에 휘둘리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함부로 빼앗으려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프로불편러들의 과대망상과 열등감을 전부 해소해줄 수 없다. 맞춰줘도 끝도 없이 그런 문제제기는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 어리광, 참견, 폭력에 더는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범죄, 잘못이 아닌 이상 무슨 행동이든 해도 되는 자유가 있다. 당신이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을 배려해준다고 착각하지 마라. 차별 해소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당신이 차별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가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또 생각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한글파괴라면서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문제는 제대로 된 맞춤법, 단어를 모르는 것일 뿐인데, 제대로 된 맞춤법을 배워서 알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줄임말 자체를 없애버리자면서 그러면 다들 맞춤법에 맞게 쓰지 않겠냐는 생각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생각이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신조어나 줄임말이나 욕을 못쓰게 하면 모두가 바른말만 쓰지 않겠냐는 발상은 이상적이고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할 일은 뻔하다. 줄임말을 쓰는 사람들을 한글파괴범이라며 욕하고 공격하며 쓰지 말라고 강요할 것이다. 그런 무식하고 야만적인 폭력을 “한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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