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음이 덜 두려운 이유

나는 죽는게 무서웠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게 아닐까? 정확한 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두렵게 생각할 수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보려고 한다.

죽는게 두려웠던 이유는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지금의 나는 이 세상을 느끼고 생각하며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확실히 살아가던 내가 그 삶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분명히 존재하고 내가 현실을 분명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어쩌면 확실한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존재나 나의 삶 자체가 애초에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이었다면 죽음이라는 것도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수면 마취가 돼서

점점 정신을 잃게 된다.

수술이 끝나고

나는 눈을 떳다.

수술실에 누워있던 나와 깨어난 지금의 나는 정말 동일할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비슷한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나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비밀요원, 또는 외계인이

나를 납치해서

구덩이에 버린다.

아 잘 잤다~

그리고 나의 기억까지 완벽하게 복제한 복제인간을 내 방에 놔둔다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번에는 그들이 조금 더 과감하게 5분에 한 번씩 나를 납치한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납치를 당하는 순간 완벽하게 복제된 나로 계속 교체해주는 것이다.

나는 현실에서 이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고, 내가 정말 고유한 하나의 존재이며 온전히 계속 살아가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의식은 계속 끊어지고, 분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의식이 필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분리된 한장 한장의 사진일 뿐인데 빠르게 다음 사진을 보여주면 사진이 움직인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식도 사실은 아주 짧은 순간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이 이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5분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5분 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지는 중요한게 아니다. 5분 전을 떠올리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5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의식이 분리되어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리고 의식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고 착각하게 되는 또다른 이유는 방금 전에 내가 했던 일을 내가 확실하고 완벽하게 기억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러개의 공에는 1과 2가 적혀있을 뿐인 로또 기계가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는 숫자를 받아서 기억해야 한다.

이 공은 1분에 한 개씩 나온다.

그러면 하루에 약 천개의 숫자를 외워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사람은 몇명이나 있을까? 또한 단 하루가 아니고 일주일, 한달, 1년 동안 나오는 숫자를 전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나는 인간이 기억할 수 있는 양에 대해서 말하려는게 아니다. 내가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돌아가서 정확하게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를 기억해낼 수 있다면 지극히 단순한 숫자 1과 2 중에 어떤 숫자를 받았는지는 아주 쉽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과거를 아주 자세하고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단순한 부분은 확실하게 기억한다는 것조차도 어쩌면 착각이나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의식도 매 순간마다 끊어지고, 그것을 이어진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기억조차도 너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1분마다 납치를 당해도 스스로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내가 1분마다 죽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실에서의 죽음이란 단지 더이상 복제인간이 복제되지 않을 뿐인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을 과학기술로 되살린다면 인류에게 정말 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정말 기대된다.) 되살아난 아인슈타인도 현재의 과학기술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더 신나게 발휘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과거에 죽은 아인슈타인에게 되살아난 아인슈타인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식으로 생각하면 영생은 큰 의미가 없다. 복제인간으로 교체되는 것이 영원히 이어질 뿐, 내가 매 순간 의식이 끊어지고 분리되는 것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까. (물론 우리의 삶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영생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어쩌면 영생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삶은 너무나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더 가치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책을 남기거나 위대한 업적을 남겨서 내가 죽은 후에도 내가 했던 주장이나 생각, 또는 나의 이름과 업적을 세상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것이 더 영생에 근접하는게 아닐까? (물론 그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만…)

이런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는 둘다 내가 맞지만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르다.

결국 이런 생각의 핵심은 인간이 시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 흐르는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말이다. 그저 짧은 순간을 인식하고 불완전하게 기억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애초부터 완벽하게 제어할 수가 없다. 그저 우리의 뇌가 우리가 분명하고 온전하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삶이 의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과거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기억도 불완전하지만 매 순간은 그 순간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은 그 시간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을 너무 불행하지 않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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