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여성 가산점에 대한 나의 생각

일단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때문에 재, 보궐 선거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유 때문에 여성 가산점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 정당들도 그런 이유에서보다는 약자, 여성을 위한 가산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 시장이 여성을 성추행했다고 해서 다른 남성 후보가 책임을 진다거나 여성 후보가 가산점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성별은 단지 성별일 뿐이다. 모든 개인은 다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성별 때문에 연대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구식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여성이 약자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여성이라는 성별은 모두가 약자인가? 박영선, 나경원이 약자인가? 정치계에서 인지도에서 탑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산점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어느정도의 인지도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가산점에서 제외한다는 것도 이상하고 기준도 애매모호하긴 하다. 나는 애초에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야말로 여성에게 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 정치계에서 왜 약자로 취급받아야 한단 말인가? 여성이 가산점을 받아야만 정치계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부분에서 불리하단 말인가?

왜 여성 정치인이 소수인지를 생각해보자. 정치를 하려는 여성이 적을 수도 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성 후보보다는 남성 후보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차별적인가? 그것은 국민들의 인식 자체가 차별적이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최대한 양보해서 정말 국민들에게 어느정도 차별적인 인식이 존재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여성의 능력을 입증하고 증명하는 것이다. 여성 후보의 홍보나 발언 시간이나 등등의 곳에서 여성 후보에게 더 이익을 줘서 더 확실하게 해당 여성 후보에 대해서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고, 여성 후보의 능력을 더 제대로 알리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해결책이지, 막무가내로 투표결과에서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투표한 사람들을 차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국민이 뽑는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 여성, 약자에 대한 가산점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틀렸다고 볼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 다수의 국민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정말 적은 것이 정말 차별 때문일까? 동등한 입장에서 대결하자는게 차별 해소 아닌가? 여성을 약자로 보는 것이 차별 아니냐는 것이다. 도대체 뭐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건가? 현재 정치계에서 여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이 지지받는 경우도 없다. 도대체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여성에게 차별적이란 말인가? 오히려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이 여성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 애초에 정치계에서 여성의 비율이 극단적으로 적다는 것이 어떻게 여성에게 차별적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나? 일단 어떻게 해서든 여성의 비율을 올려놓고 나서 생각해보자는 것은 너무 안일하지 않은가? 또한 여성 정치인이 적어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적었다? 나는 그것도 동의할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어떤 부분에서 여성에 대해서 소홀했다는 것인가? 아이들을 위한 법은 아이들만 만들어야 하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별적인 것인가? 흑인에 대한 법은 흑인이 만들어야만 하나? 그렇지 않으면 균형잡히지 않은 것인가? 나는 여성 후보에게 가산점을 주는 이유들이 모두 구차하다고 생각한다. 게이, 소수의 성적 취향을 인정하지 않고 혐오하는 사람들이 출산률이나 에이즈와 같은 직접적이지 않은 억지스러운 이유를 갖다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 가산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직접적인 이유가 없다. 그냥 막연하게 그런 것 같으니까 분위기에 휩쓸려서 우르르 여성 가산점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유들이 하나같이 전부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여성은 약하지 않다. 여성을 약하다고 정의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것이다. 여성들도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으면 모두 받아들이는 태도를 고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차별 해소를 오히려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약자라는 시선으로, 가산점, 특혜를 받는다면 그 제도는 언제쯤 사라져야 할까? 언제쯤 여성과 사회 모두가 만족하는 균형잡힌 세상이 될까? 애초에 가산점이나 특혜로는 해결될 수 없고 오히려 차별과 편견을 키울 것이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결과론적인 성별의 비율만으로 차별이 존재한다고 정의한다면 대다수의 남성들은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의 절반은 남성들이다. 그 남성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남성들은 기득권을 뺐긴다고 생각해서 반발하는게 아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구체적인 차별을 상식적인 방법으로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만 차별이 사라질 수 있다.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핵심은 이것이다. 능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성별 때문에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차별적인 것이고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성별의 비율과 같은 결과론적인 것으로 차별의 존재유무를 따지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여성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지. 막연하게 여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정당성도 없고 해결책도 아니며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 더 늘어날 것이고 남성들의 반발만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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