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차별 (기생충, 조커, 호텔 뭄바이(스포 있음)) + 내 생각 (자살, 출산률, 외교, 페미니즘)

영화에서 나오는 차별, 빈부격차와 같은 내용들에 대해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영화 결말 스포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신경 안 쓰고 막 쓸 것이기 때문에 스포가 있을 수도 있음을 미리 알린다. (사실 영화 내용은 매우 적다.)

조커를 보면서 묻지마 범죄 테러, 폭동, 시위, 약탈, 도둑질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그들의 범죄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도태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런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외면해놓고, 그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오직 그들의 잘못으로만, 그들이 못난 탓으로만 돌리는게 맞는 걸까?


영화에서 관객들이 나오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주인공은 절망적이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 관객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으며 너무나도 1차원적이고 기계적이고 뻔한 반응만을 보인다. 웃기면 웃고, 안 웃기면 안 웃고, 잘한 사람에게는 찬사를, 못한 사람에게는 야유를 보낸다. 그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장면들이 도태된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린 것처럼 보였다. 또한 나도 그 생각없는 관객 중에 한 명이었던 것 같다.

누군 안 힘든가? 범죄를 저질러서 편하게 돈 벌고 싶은 마음이 없나? 그럼에도 다 참고 열심히 살아가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도태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을 계속 내버려두고 외면해서 사회적으로 도태된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난다면,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의 비율도 당연히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범죄의 그 피해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 사회 전체가 보게 되는 것이다. 깍쟁이처럼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는 식으로만 따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과관계가 너무 명백한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옳고 그름만을 따지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단한 희생이나 노력이 필요하다기보다는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우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그들이 불쌍하고 가여워서가 아니고, 나도 언젠가 그런 도태된 계층에 속할 수 있음을 알고, 사회의 안전과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꼭 그들이 못나서 도태된 계층에 속하게 됐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오는 부자들은 착하고 어리숙하다. 못 사는 주인공의 가족들은 영악하고 똑똑하다. 현실의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경우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운이 좋아서 성공한 사람, 운이 나빠서 실패한 사람이 없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공하지 못하면 나태하고, 게으르고, 머리 나쁘다는 식으로 단정짓는 경향이 있다. 최근의 아파트 갑질 논란, 유치원 교사 폭언 논란 등등만 봐도 우리 사회가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보다 못해보이는 상대에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무례하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스스로 도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물론 경제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은 분명히 더 좋아졌다. 하지만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률을 보면 경제적인 부분, 먹고 사는 것이 꼭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부의 대물림이 심해지고, 성공의 길이 더욱 좁아졌기 때문일까? 그보다 근본적으로 “왜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어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고,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도 모두에게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성공하지 못하면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공하려고 발버둥치는게 아닐까?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스스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되고,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 사람들은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거나, 자살을 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런 불행한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을까? 나는 이 문제는 사회와 부모, 어른들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무시해도 되고, 성공하지 못하면 무시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앞에 말했다시피 성공은 상대적인 것이고, 성공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다수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기생충 결말 부분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다. 부잣집 아빠 이선균이 냄새 때문에 손으로 코를 틀어막자 못 사는 집 아빠 송강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선균을 칼로 찌른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겨우 그것 가지고 왜 사람을 찔렀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송강호를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처음부터 봤다면 송강호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소리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꾸준히 자주 들어왔고, 그 말들이 계속 마음속에 상처로 쌓여왔고, 그것이 마지막에 터져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송강호에게 대놓고 냄새가 난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송강호가 우연하게 몰래 엿듣게 됐을 뿐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선균을 포함한 부잣집 사람들은 생각보다 매우 예의가 있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듯, 갑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을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분명히 이선균은 송강호를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차별하고 있었다는 것, 그것을 송강호는 알게 모르게 항상 느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 얼마나 더 잘해줘야 하고 존중해야 하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나는 애초에 을이라고 무시하고 차별하는 인식, 마음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예의있는 척하고, 숨기려고 애쓴다고 숨겨질까? 상대방이 아무리 예의있는 척을 한다고 해도 나를 무시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통 사람들은 다들 느낄 수 있다. 물론 열등감, 피해의식이라고 할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결론내면 그런 일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다.


영화 호텔 뭄바이에서는 좀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차별을 보여준다. 영화에 나오는 서양인들 대부분이 차별적인 말과 행동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테러리스트와 같은 피부색, 인종으로 보인다고 아무나 테러리스트와 한패로 몰아가거나 착각한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면 그들 모두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내용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미개하고 멍청하다고, 악당 역할로 그려질 것이라고 추측했었는데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영화가 내 고정관념을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서양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 서양인들을 멍청하고 미개한 악당이라고 단정지어서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런 차별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동양인이나 흑인을 차별하고 폭행하는 서양인들도 사실 주변 가족과 친구들에게는 착하고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테러를 저지른 청년들도 악당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어릴때부터 테러 조직에게 교육받고 세뇌당해서 이용당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그냥 그 테러조직이 나쁜 거잖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사회가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외면했기 때문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고, 불만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테러조직은 그런 도태됐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힘을 키웠던게 아닐까?

개신교를 혐오했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 교리 자체가 범죄를 저지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면 종교는 문제가 없다. 결국 범죄나 잘못 자체를 지적해야지. 막연하게 종교나 종교인 전체를 일반화해서 혐오하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앞에도 말했지만, 그런식으로 사회와 단절되고 도태돼서 불만이 생기면 오히려 범죄의 구심점,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사람을 선과 악, 이분법으로 나누고, 또는 인종이나 직업이나 성별이나 종교와 같은 것으로 함부로 일반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함부로 타인을 배척하고 악당으로 몰아가다보면 악당이니까 무슨짓이든 해도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 쉽다. 결국 남의 잘못을 지적하던 내가 그들과 똑같은 잘못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양인을 차별했던 서양인들도 코로나 때문에 모든 동양인을 악으로 정의했기 때문에 그런 잘못을 저질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중국, 북한을 혐오하고 배척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요즘 댓글들을 보면 너무 비난하고 혐오하는 글들만 판치는 것 같다. 중국, 북한이 잘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렇다고 중국, 북한을 악으로, 미국을 선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모든 국가는 사람처럼 다양한 측면이 있다. 그래서 어떤 나라든지 우리에게 피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면,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측면도 존재할 수 있다. 사회를 위해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그냥 놔두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의 평화와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중국이나 북한과도 대화, 교류를 이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이나 북한의 잘못된 부분을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적으로 혐오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혐오하고 부정하고 비난만 하면 논점이 흐려지게 된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제대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난 페미니즘이 성별간의 갈등, 여성들의 피해의식, 열등감, 이기심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페미니즘 지지자들을 모두 부정하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진 이유를 오직 그들이 못나고 바보같고 이기적이어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여러가지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터져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우리, 사회의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여야만 그런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힘당을 지지하는 20대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이 기득권과 기득권을 대변하는 언론, 정치세력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속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이 경험이 없고 잘 모른다며 그들탓만 할 것이 아니고,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런 불만을 가지게 됐는지를, 그들이 스스로 도태됐다고 느끼고 외면받았다고 느끼게 만든 어른들, 사회 전체가 반성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안 변한다, 어차피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었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다.” 이런 생각들이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다시는 기회를 주면 안 된다는 소리 아닌가? 결국 못 사는 사람은 노력을 안 한 사람이니까 도와줘봤자 소용 없고, 한 번 잘못한 사람은 다시는 믿어서는 안 되고, 전부 고립시키고 도태시켜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렇다고 모두를 다 믿고 신뢰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자. 뭐 이런 멋드러진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도움을 주고 믿어주면 분명히 변할 사람이 있음에도 그들에게 기회를 줄 필요가 없고 배척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정답이나 진리처럼 돌아다니는 것은 옳지 않고, 그것이 사실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경쟁이 필요하고 능력있고 노력한 사람이 성공한다. 이런 생각이 나쁘다는게 아니다. 경쟁도 필수적이고 필요하지만, 그 한가지 원리만으로 사회가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서로 도와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을 다수가 공감한다고 해서 이 세상에 도태됐다고 느끼는 사람이 전부 사라진다거나 모든 범죄가 사라지지는 않겠지. 하지만 의사가 모든 환자를 다 완치시키는 것은 아니고 모든 환자를 다 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듯,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사회는 더 안전해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단지 각자 무엇이 정답이고 더 나은 해결책인지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실천할 것인가가 문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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