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지능이 높은 인간이 살아남았을까?


15초 동영상 따라하다 죽거나 다치거나…’틱톡’이 뭐길래 (2021.05.31/뉴스데스크/MBC)

위 영상은 어떤 소녀가 틱톡의 영상을 따라하다가 몸에 큰 화상을 입었다는 내용이다. 댓글을 보면 멍청한 사람들이 걸러졌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댓글들이 보인다. 나는 그런식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걸러져야 하는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영상의 소녀는 멍청하고 그 기사를 본 나는 그렇지 않다는 그 확신, 그 오만함 자체가 스스로 멍청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영상에서의 그 소녀는 누가 봐도 멍청한 짓을 한거 아니냐고? 나도 언제든지 실수, 착각, 잘못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어린 아이는 더더욱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지. 그것을 지능의 문제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다. 저런 사고가 온전히 지능 문제라면 똑똑한 아이들은 가스, 불, 전기 조심하라고 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겠네? 어차피 다 알아서 눈치껏 조심하고 판단할테니까?

그 소녀는 당신과 나보다 더 똑똑할 수 있다. 영상의 행동으로 그 소녀의 지능이 낮을거라고 단정짓는 것이야말로 나는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능이 낮은 인간은 죽고 지능이 높은 인간들만 살아남았다? 난 절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연선택 이론이 모든 생명의 본능과 진화를 설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국의 회색가지나방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의 종류가 있는데 산업 혁명으로 나무에 그을음이 생겨 어두워지면서 그와 비슷한 어두운 색의 나방들은 생존하고, 밝은 색의 나방들은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히게 되면서 어두운 색의 나방들이 훨씬 많아졌다.

어두운 색의 나방들이 지능이 더 높아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지능으로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힘도 아니고 능력도 아니다. 누가 더 생존에 적합하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될 뿐이다. 단지 지능이 높다는 것은 유리한 조건 중에 하나일 뿐이고 지능이 낮다는 것은 불리한 조건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능이 높은 사람도 일찍 죽을 수 있고, 지능이 낮은 사람도 오래 살 수 있다. 주변 상황만 적절하게 주어진다면 말이다. (교육 같은 것이나 주변 환경 같은 것들 말이다.) 오히려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자살을 많이 하고,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지능과 생존이 명확한 연관성이 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멍청하고, 극단적으로 똑똑한 사람처럼 극단적인 경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멍청한 사람이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일찍 죽을 수 있고, 극단적으로 똑똑한 사람이 주변 상황과 관계없이 성공해서 오래 살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경우이다. 대다수는 그런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다시 말하지만, 사고를 당한 소녀가 지금 사고를 당하지 않은 나머지의 사람들보다 멍청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방심하고 안일하면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것 자체가 지능이 높기 때문일까? 지능이 최고의 가치일까? 그런식이면 나중에 큰 사고가 나서 인류가 멸망하고 바퀴벌레만 살아남는다면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더 지능이 높은 건가? 인간은 그런 사고를 대비하지 못한 것이고 바퀴벌레는 그런 환경에서도 살아남도록 설계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지금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것이 지능과 연관이 있긴 하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근거가 될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뭐든 조심성 있게 행동하면 사고를 덜 당하는 것이고, 조심성이 없으면 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조심성이 없어서 사고가 났던 아이들은 다 멍청해서 그런 것일까? 오히려 그런 아이들이 커서 더 성공한 경우가 없을까? 어떻게 한가지 사건만으로 지능을 단정짓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내가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더 나은 것, 옳은 것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처럼 못난 사람도 열심히 노력해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을 만들어내면 나도 못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잘 몰라서 하는 실수나 잘못은 거의 화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못난 생각, 사고방식의 말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난다. (사실 그것도 내가 차근차근 잘 설명하면 되는 부분인데, 내가 화를 낸다는 것 자체가 내 수준의 한계인 것 같다.)

이 세상에 잘난 사람이나 남의 잘못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착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면 보통의, 찌질하고 못난 다수의 사람들은 다 좌절해야 할까? 결국 자기자신을 계속 성찰하고 반성하고 공부하면서 더 나아지려는 태도만 가진다면 잘난 사람 또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추구하는 생각 자체가 못나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일베나 부정부패한 정치인들, 범죄자, 사기꾼들을 보면 멍청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대단한 대학을 나오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이익,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정당, 정치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만 자신의 지능, 능력을 사용한다. 더 현명하고 나은 방향이 보여도 방향을 바꾸지 못한다. 결국 그사람들은 남들보다 똑똑하고 잘났다고 불릴 수 있는 인간임에도 못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생각의 방향, 무엇을 추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못났든 잘났든 바른 것을 추구하며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영상의 소녀를 지능이 낮다고 생각하는 그 사고방식 자체가 너무 못났다고 생각한다. 그 소녀를 지능이 낮은 것으로 정의해서 그런 사고를 일으키거나 당하지 않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낫다는듯이, 우월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그 못난 생각과 태도 말이다. 그 생각 자체도 틀렸고, 그런 태도 자체도 너무 못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야만 진짜 그 소녀처럼 바보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리하면 사고는 지능의 문제라기보다는 안일하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소녀의 지능이 낮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 바로 안일한 태도와 생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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