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보면 이 우주 전체의 시간도 찰나일 수 있다.

인간들은 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수준 높은 과학기술이나 철학, 관점을 접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다른 지적 생명체가 우리와는 소통할 수 없는 상태인 건 아닐까? 그들이 너무 거대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먼지만한 건 아닐까? 또는 그들의 1초가 우리에게는 100년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도 그들과 소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어찌 그들에에 우리 존재를 알린다고 해도 그들에게 한마디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으려면 수천년, 수만년이 필요하다. 결국 인간의 수명으로는 수백, 수천 세대를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우주가 생명체는 아니지만,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우주의 시간으로 보면 지구의 생성과 소멸도 찰나에 불과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 직접적으로 느낄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우리를 누군가 어항 속의 금붕어를 관찰하듯이 관찰하고 있는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냥 실험실의 실험체나 컴퓨터로 구현한 시뮬레이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욱 허무하게 바라보면 우리는 애초에 실험의 대상조차 아니었을 수 있다.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는 그 존재들은 우리가 존재했었다는 것 자체를 모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우리가 사는 우주가 먼지보다 작을 수도 있고, 우주의 시작부터 끝나는 시간이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 결론을 내려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드는 생각은 참 허무하다? 결국은 상대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허무하고 하찮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다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는 것과 비교를 하게되고 그러면 나라는 존재나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먼지보다 작고, 그것은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삶의 이유를 찾으려면 최대한 주관적인 관점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This entry was posted in 1 철학, 정치, 시사평론 and tagged , , . Bookmark the permalink.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