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

아까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존재야. 그저 지금의 내가 과거 나였던 존재의 기억을 담고 있을 뿐이야.

죽음이란 그 나의 기억이나 여러가지 특성을 담은 객체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야.

아까의 나는 죽은 거나 다름이 없고, 인간은 매 순간 죽는거나 다름이 없어.

내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절대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와 상대적인 가치가 있듯이, 죽음도 어느정도 상대적이고 이 세상의 기준에서 의미가 있지만 사실 나라는 존재가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숨쉬지 않고 이 세상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잖아. 그건 매우 개인적인 부분이거든. (누군가는 또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르지. 명예 같은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나는 내 존재가 죽는게, 사라지는게 두려워. 그런데 사실은 그 내가 인식하는 나라는 존재는 사실 매 순간 죽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야.

과거의 기억과 여러 특성을 담은 지금 이 순간의 나도 사실 너무 불분명해. 과거에 대한 기억이 정확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의지가 있지도 않아. 그냥 아 나는 나인가보다 하면서 그냥 흘러가는 거야. 그게 삶인거고…

인간의 시선으로는 삶은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절대적인 시선으로는 너무 불완전하고 허무해.

그러니까 살아있을 때는 지극히 인간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시선으로 생각하며 살아도 되지만 죽는다는 건 결국 절대적이 되는 과정이잖아.

이거랑 맥락이 비슷한 거야. 절대적으로 보면 이 우주조차도 아무 의미가 없어. 또한 상대적으로 봐도 인간은 너무 하찮은 존재야. 그래서 인간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봐.

나한테 의미있는게 우주에서 가장 의미있는 거야. 더 완벽해지려면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해. 내가 없으면 이 우주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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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죽음은 절대적인 시각으로 봐야해. 주관적인? 개인적인 시선으로 보면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원래 죽음이라는 것, 소멸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지. 내가 죽은 이후에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니까.

다시 말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살아야 하고(사회의 인정을 받아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죽음은 절대적인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거야. (우주조차도 허무하다 뭐 이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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