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의 근원을 찾았다!

전에 이런 글이 있었어.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윤석열을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그러니까 그를 까는 내용은 대부분 동의를 해주는 거야.

그러던 어느날 이런 글이 올라왔어. 윤석열의 나온 배를 보면서 그렇게 살찐 사람은 그의 인생이나 일상을 알 수 있다는 거야.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

하지만 그 글은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어. 당연하잖아. 분명히 살찐 것이 자신의 건강에 덜 관심을 가진다거나 자제력이 부족한 측면을 보여줄지도 몰라.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는 거야. 절대 판단해서도 안 되고 말이야.

배가 나온 훌륭한 사람은 없겠어? 남을 위하는 사람은 없겠냐고 너무 당연한 말이잖아. 그런식으로 배나온 사람 전체를 문제가 있는 사람,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차별이나 혐오 조장은 그런 것 같아. 내가 싫어하는 것의 이유, 근거를 계속 찾다보니 억지를 부리게 되는 거야. 어떻게든 남들에게 동의를 받고 싶고 관심을 받고 싶어서 무리하고 과도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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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혐오 조장이 딱 그래. 캣맘이랑 고양이가 미친듯이 싫은 거야. 더 근본적으로는 내 주변에 고양이가 너무 싫은 거야. 고양이 소리도 싫고 그냥 고양이에 관해서는 다 싫은 거야.

그러니까 그냥 기본적으로 캣맘이라거나 고양이가 많아져서 생기는 문제를 해소하자는 주장을 넘어서 고양이 자체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주장을 하게 되는 거야.

내가 싫어하는 존재를 악마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동의를 받고 관심을 받고 같이 까고 싶었던 거야. 그게 바로 혐오 조장이고 차별 조장이야.

참 찌질한 것이지… 문제라면 그것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야. 요즘 댓글을 보다보면 고양이 자체가 해로운 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쥐는 안 해롭나? 그렇다고 쥐를 멸종시키자는 주장을 누가 하지? 내 집안이나 주변에만 없으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어쩌다가 고양이는 아예 밖에는 존재하면 안 되는 해롭기만 한 생명체로 정의되어버렸냐는 거야. 고양이가 장난으로 새는 잡으면서 쥐는 안 잡겠냐고… 새가 벌레는 잡아먹고 인간이 농사한 곡물은 안 먹겠냐는 거야.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새는 신성한 동물이 됐는지 몰라. 새도 너무 적어지면 문제지만 너무 많아지면 역시나 문제야. 고양이도 적절한 수만 있다면 새의 개체수 조절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어떻게 새를 죽인다는게 고양이가 해로운 이유, 근거가 될 수 있냐는 거야. 고양이가 그렇게 새들을 죽여서 새들이 멸종 직전이야? 특정한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곳에서 고양이가 문제가 되면 그 지역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거라는 거야.

고양이를 모두 박멸해야만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은 잘못이라는 거야. 그런식으로 몰아가는 사람,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에게 넘어가면 안 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배가 나왔다고 배가 나온 사람 전체를 무능하고 나태하게 정의하려고 드는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해? 내가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고양이를 해롭기만 한 동물로 정의해서 집 밖에 사는 고양이는 전부 멸종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게 정상으로 보이냐는 거야.

그건 오히려 문제의 해결책에서 멀어지는 거야. 윤석열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진짜 문제를 찾아내서 비판해야지. 내 집 주위에 고양이가 너무 많으면 그게 얼마나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조사해서 비판하고 해결책을 찾아야지. 도대체 뭐하는 거야.

다시 정리하면 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주목 받고싶고 동의를 받고 싶어서 억지스러운 이유를 생각해내고 만들어낸다는 거야.

그건 어떻게 보면 페미랑도 비슷하네. 자신들이 이익을 보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차별을 이용하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거야. 스튜어디스 복장은 성 역할 고정관념이라고 하면 모르겠는데 성차별은 아니거든. 그런데 성차별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킨 거야. 성차별이 되려면 바지가 더 우월한거여야지. 아니면 남자는 바지든 치마든 다 자유롭게 입을 수 있었거나. 말 그대로 바지가 업무를 하는데 더 편의성이 있었을 뿐인거잖아. 그러면 그것을 위해서 바지를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성차별을 꺼냈잖아.

내 주변의 고양이를 모두 몰아내기 위해서 억지스럽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서 고양이 혐오를 조장하고 고양이 때문에 인간과 생태계가 피해자가 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거야. 그냥 내집 주변의 고양이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데 그게 이슈가 안 되고 해결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고양이에게,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 모두에게 해로운 이미지를 입혀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거야. 혐오를 이용하고 억지로 피해자를 만들어서 그 혐오가 정당한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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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고 미운 것을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 거기에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쏟는 거야. 그게 합리적인지 문제의 해결책인지는 중요한게 아니야. 그냥 맹목적으로 그것만 생각하는 거야. 그러다보니 그런 혐오 조장이나 차별 조장의 주장을 하게 되는 거라고 봐.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싶으니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야. 그렇게 차별과 혐오가 시작되는 거야. 한심한 짓이고 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지. 이 세상에 그렇게 혐오 조장하고 차별 조장하려고 들면 다 할 수 있어. 임산부, 아이, 아이의 부모, 개, 중국인, 여성, 운전하는 여성 등등… 문제를 짚는 것과 혐오를 조장하는 건 다른 거야. 그걸 구분해서 볼 줄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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