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이 필요한 이유

어차피 인간은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 당연하고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성이라고 불리는 그 나름의 제한을 두려는 의지와 노력은 인간 사회에서 아주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이 없어지면 세상은 정말 잔인해지고 오직 힘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결정나게 될것이다.

당신이 지금은 중간에 속한다고 해도 약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상대적으로 당신이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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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 보호와 존중은 오직 인간들 사이에서만 유지되면 되는 걸까?

인간에게만은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다른 생명에겐 잔인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식물이나 채소는 피가 나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지만, 인간과 같은 특성을 가진 다른 동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것이다.

나는 내 의지가 강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완벽하게 채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나 먹는 음식에 대해서 작은 불편함이나 죄책감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생각없이 하던 행동이나 먹던 음식에 대해서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 불편한 부분을 없애거나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절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내돈으로 음식 많이 사서 조금 먹고 다 버리고 그러는게 자유는 맞지만 과연 그것을 괜찮고 당연한 행동으로 봐도 되는 걸까?

이 세상이 무한대의 공간과 자원이 존재한다면 그래도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인간성과 절제는 나 그리고 인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었다면 법이나 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 법이나 정부도 결국은 기득권을 위해서 이용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인간이 늘어나고 점점 더 개선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이기심, 경쟁을 이용해서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절대적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쟁과 동시에 모두를 위하는 노력과 배려와 협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인류는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더 모두를 위한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결국 나도 누군가의 생존을 위해 죽어야만 할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조건 모두를 위하는게 정답은 아니듯이 무조건 나만 생각하고 그런 세상을 추구하는 것도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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