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너무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슬프고 현재 내 몸도 정신도 좋지 않아서 고양이를 떠나보낸 후에 내가 무너져버릴까봐도 걱정이다.
집에서 편안하게, 상냥하게 보내주는게 최선이라는 생각과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교차한다. 시골이라 마땅한 병원은 너무 멀리 있고 고양이 나이도 많고 낯을 심하게 가려서 데려가는 것도 스트레스이고 강제로 먹이를 급여하거나 그런 모든 과정들이 지금 상태의 나에게는 너무 벅차게 다가왔다.
아무튼 이제는 정말 힘이 없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고양이를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러다가 문득 나름 조금은 위안이 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언젠가는 보내줘야 한다. 고양이도 보내줘야 하고 가족도 보내줘야 하고 나도 떠나야 한다.”
그리고 “그게 그저 지금일 뿐이다”라는 생각… 결국 시기는 조금 다를 수 있어도 언젠가는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실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고양이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 고양이가 힘들어하는 과정을 다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은 위안이 된 것 같아서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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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지금껏 키우던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본적이 한 번도 없다. 잃어버리기도 하고 이사를 가면서 시골 할머니 댁에 보내버리기도 하고…
길을 잃어버리고 떠돌아다니며 나와 우리 가족을 열심히 찾아다녔을 개를 상상하면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항상 내가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마음은 너무 힘들면서도 약간은 기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를 죽는 순간까지 온전히 책임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서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나 자신을 위해서도 고양이를 위해서도 더 상냥하게 쓰다듬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햇빛이 따뜻할 때는 바깥을 구경시켜주고 내려가고 싶다고 하지는 않는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주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무책임하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도망치지 않고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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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키웠던 개가 가장 나를 좋아해줬었다. 그래서 잊지 못한다.
지금 보내려고 하는 고양이도 처음 키우게 된 고양이인데 나 밖에 모른다. 아마 다시 고양이를 키울 것 같지도 않고 정말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할 최고의 고양이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저 엄마가 동물을 좋아하고 버려진 동물을 데려오다보니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고양이도 그렇게 들이게 된 것이다. 아마도 경쟁에서 도태된 길고양이 새끼가 길바닥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엄마가 일 가면서 나보고 방으로 데려가라고 해서 나는 싫은 티 팍팍 내면서 손에 덜렁덜렁 들고 데려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내가 데려왔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나중에 엄마가 중성화 수술을 하러 데려갔었기 때문인지 나만을 좋아했었다. 나 같은 못난 사람을 뭘 보고 그렇게 좋아해줬는지…
처음에는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못 생겼다고 이름을 당시에 개콘에서 못생긴 캐릭터로 유명한 (오)나미라고 지었을까… (털이 노란색이라서 그렇게 정한 것도 있다.)
그런데 사료 먹이고 씻기고 하면서 너무 예뻐졌다.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나한테는 아직도 가장 예쁘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나의 고양이 나미야… 만나서 반가웠어.
나한테 나타나주고 나를 좋아해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아직 안 죽었는데 혼자 눈물 흘리면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