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과 번성과 멸종의 의미

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었지만 멸종위기종들이 인간에 의해 보호받기도 하지만 좁은 곳에 갇혀서 사는 것을 보며 고통스럽다거나 자유를 빼앗길바에는 죽는 것, 멸종하는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방금 나의 그 생각이 나름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는 적절한 예를 생각해낸 것 같다.

인간에 의해 숫자로만 보면 엄청나게 번성한 종들이 많다. 소, 돼지, 닭이 그렇고 사람의 식량을 위해 키워지는 수많은 식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그냥 생존과 숫자를 늘린다는 번성의 의미로 보면 그 동물과 식물들은 엄청나게 성공한 종들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 종들이 번성했고 성공한 종들이라고?

번성이라기보다는 사육, 이용당하고 있다고 보는게 더 정확하지 않은가? 인간이 외계인에게 사육당하며 수천억명으로 불어난다면 그것이 인간이 번성했다고 말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뭐 사실 가축과 작물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화가 통해서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하지만 숫자를 불리는 것, 멸종하지 않는 것이 과연 멸종하는 것보다 나은지 우리는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멸종위기종을 보호한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일 뿐이다. 그 동물이나 식물을 위해서 도움을 준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 동물과 식물들이 번성이니 멸종이니 그런 것을 알기나 하겠냐고, 그런 개념이 있기나 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생각대로면 그들은 멸종될 위기에 처해도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는 말이 된다.

그 생명들, 당사자들은 사실 멸종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모두 인간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약 멸종의 개념을 알 정도의 지능이 있는 종이라면 자유 없이 좁은 곳에 갖혀 사는 처참한 삶보다 멸종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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