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존엄사와 자살률: 단순 비교의 함정

최근 조력존엄사를 허용한 국가에서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나오며, 조력존엄사 허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부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과연 타당할까요? 이를 대한민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조력존엄사 허용과 자살률 증가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조력존엄사를 허용한 국가에서 자살률이 증가했다는 통계는 주목할 만한 지점이긴 하지만, 이를 조력존엄사와 단순히 연결짓는 것은 지나치게 1차원적인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조력존엄사를 허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이는 조력존엄사 허용 여부가 자살률과 반드시 직결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자살률이 높은 사회적 배경에는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고통, 사회적 고립, 문화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자살률 문제는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논쟁을 넘어서, 사회적 안전망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자살에 관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환자라면 자살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논란

조력존엄사 시행 후 자살률 증가…의료계 주장 힘 실리나?에서 서울대 철학과 김현섭 교수가 제기한 질문인 “자살에 관한 결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환자라면 자살할 필요가 있을까?”는 흥미로운 철학적 접근으로 보이지만, 심도 깊은 현실적 고려가 부족한 발언으로 보입니다.

이 논리는 자살을 선택하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비합리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환자 개개인의 고통과 상황을 도외시한 발언으로, 특히 조력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처한 극도의 신체적 고통과 삶의 질 저하를 간과한 것입니다.

조력존엄사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삶을 단순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고통 속에서 품위 있는 마무리를 선택하려는 이들입니다. 이런 선택을 “정신적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삶과 결정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조력존엄사를 반대하는 1차원적 논리의 문제점

조력존엄사 반대의 근거로 자살률 증가를 제시하거나, 이를 선택하는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태도는 매우 단편적입니다.

  1. 국민 찬성률을 무시하는 태도
    조력존엄사와 존엄사에 대한 국민 찬성률은 높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이 삶의 품위를 지키는 권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를 무시하며 “국민이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나, 반대 의견만을 진리로 여기는 태도는 단순히 독선적일 뿐입니다.
  2. 자살률 증가의 진짜 원인에 대한 무지
    조력존엄사가 자살률 증가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은, 자살률 증가의 근본적 원인을 간과합니다. 자살률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 정신건강 문제,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자살률 증가를 단순히 조력존엄사와 연관 짓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논점을 흐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3. 환자의 선택을 무시하는 태도
    조력존엄사는 단순한 “죽음의 선택”이 아니라, 극심한 고통 속에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려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의사나 교수들이 환자 본인의 고통에 대해 경청하지 않고 판단만 내리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문제의 핵심: 자살률을 낮추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은 현재 자살률 1위라는 현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는 조력존엄사 허용 여부와는 무관하게,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많은지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자살률을 낮추는 수치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 정신건강 서비스의 확충
  • 경제적 안전망 강화
  • 사회적 고립을 해소할 수 있는 공동체 복원
    이러한 접근이 진정으로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방법입니다.

결론: 조력존엄사 논의의 올바른 방향

조력존엄사는 삶의 품위를 지키며 극한의 고통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봐야 합니다. 이를 자살률이라는 단일 지표와 억지로 연관 지으며 반대하는 논리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의사와 교수 등 전문가 집단은 조력존엄사 논의에 앞서, 삶과 죽음의 질을 고민하는 개인들의 목소리에 더욱 경청해야 합니다.
국민 대다수의 찬성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집단이 이를 “잘못된 선택”으로 규정짓는 태도는 오히려 비합리적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자살률이라는 단순한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조력존엄사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품위의 권리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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