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잊고 화합하자는 말은 헛소리다

“지금은 민생이 중요하다”는 논리, 과연 타당한가?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자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지금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할까? 이는 단순한 논리적 오류를 넘어, 정의의 부정을 의미한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짚고 반성해야 인간다운 사회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기억 없는 미생물과 다를 바 없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이 논리는 독재자들이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성공한 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역사는 승자의 편이라는 식의 논리는 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일 뿐이다. 이러한 시각이 유지된다면, 과거의 범죄와 학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거를 제대로 짚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적으로 과거를 묵인한 사례와 제대로 정리한 사례를 비교해보자.

  • 독일 vs 일본: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철저한 반성과 보상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식민지배와 전쟁 범죄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보이며 국제적 비판을 받고 있다.
  • 남아프리카공화국 vs 칠레: 남아공은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인종차별의 역사를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칠레의 경우, 독재 정권이 무너진 후에도 가해자들이 책임을 회피하며 여전히 사회적 갈등이 남아 있다.

이처럼 과거를 직시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으로 가는 길이다.

한국에서도 반복되는 “과거 묻고 화합하자” 프레임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반복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화합 발언이 있다. 이들은 과거 이재명을 공격하고 민주당에 불화를 만들었던 세력에 대한 철저한 반성 없이 화합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에게 “그만 잊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과거를 덮고 넘어가자는 무책임한 태도일 뿐이다.

특히 일본의 사과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일본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미래를 보자”는 태도를 보일 때마다 한국 내에서도 “그만하고 화합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과거를 직시해야 진정한 화합이 가능하다

과거의 잘못을 덮고 넘어가는 것이 과연 진정한 화합일까?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을 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나서 화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집단이나 사람이 뻔뻔하게 화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결론: 정의 없이 화합은 없다

과거를 바로잡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성공한 쿠데타는 혁명”이라는 논리는 독재자의 논리일 뿐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보자”는 말이 나오면 항상 경계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며, 국민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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