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그림체라는 건 뭘까?

오랜 고민을 하면서 내린 나만의 결론을 얘기해보려고 한다. 난 지금 그림체에 대해서 1도 고민이 없다. 어쩌면 포기했다고 할수도 있고 이런식으로 결론을 내린 이상 더 발전이 없다는 얘기도 되니까 자랑거리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잘 그리는 것도 아니면서ㅋ) 그렇지만 어쨌든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운 점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되게 귀엽고 단순한 그림체였다. 그것을 나중에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고 멋지게 그려보려고 노력했었다. (4등신 정도의 그림체를 7등신 정도로 바꾸려고 했었다.) 결국은 실패했다. 포기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 이유는 그냥 그렇게 못 그리겠더라. 인체를 공부하고 해도 어색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또는 사진을 참고하면서 그리다보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실 7등신 그림체를 포기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그렇게 그리고 싶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이고 그것을 잘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그림이다. 그 그림에 욕심을 부릴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정말 아름답고 멋지고 화려한 그림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다. 특히 나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림을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만의 스타일, 단순하고 귀여운 스타일 안에서 최대한 성의있게 그리는 수준이면 내가 만드는 스토리에 잘 어울리고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독하지가 못하다. 이걸 굳이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 자체가 안 생긴다. 조금만 힘들어도 금방 포기한다. 그래서 나한테는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고 편하게 그릴 수 있고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나만의 그림체가 가장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그림체라고 할수도 있다. 결국 그림체에 대한 욕심은 포기했지만, 만화를 완성해낸다는 최종 목적을 위한 노력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결국 성장, 발전을 하는데에 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가 그것을 간절하게 하고 싶은가인 것 같다. 하고 싶어야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하고 싶다는 이유가 단지 멋져보인다거나 남들이 다 그러니까 잘 모르면서 따라간다면 곧 포기하게 될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예전부터 가장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재능은 그것을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아닐까?

다시 그림체 얘기로 돌아와서 어릴 때는 나만의 그림체를 찾고 만들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독특하고 새로운 그림체라는 것은 뭘까? 난 그건 중요한게 아닌 것 같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싶다고 욕심을 부린다고 만들 수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가장 나에게 어울리고 가장 최선의 것. 가장 자연스러운 것. 그게 가장 개성있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새로운, 독특한 그림체를 만들겠다는 연구를 해서 결국 어떤 그림체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인정받는다고 해도 결론적으로 그것은 독특하고 새로운 그림체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나와 가장 잘 어울리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더 나은 그림체를 추구했다는 말이 더 맞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더 성장했을 뿐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냈을 뿐인 것이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창조해낸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그림체를 따라그리다가 그게 손에 익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그림체 따라했다며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의도적으로 따라했을 수도 있지.) 난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가장 멋져보이는 그림을 따라하고 흉내냄으로써 아주 빠르게 성장한 것이다. 그것은 그냥 흉내낸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나에게 가치있어보이는 것을 내가 선택해서 그것을 추구한 것이다. 개성은 어떻게 할거냐고? 그건 계속 더 나은 그림을 생각하다보면, 경험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느낌이 묻어나오고 차별성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다. 또는 정말 똑같은 그림체이면서 더 완성도가 올라갈 수도 있겠지.

이런 느낌도 있다. 내가 자주 하던 말인데 누군가는 너무 오래된 그림체는 별로라며 좀 더 요즘 유행하는 그림체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난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유행은 돌고 돈다. 또한 그 자체가 독자에게 보기 불편하거나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그림체라는 것 자체가 독자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접할 수 있게 하는 아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는 현실주의자라면서 유행에 맞추는 것이 현명하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은 그것도 그사람의 취향일 뿐이다. 그게 정답이 아니고 그사람이 그런 것을 추구하고 싶도록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런식의 태도의 사람들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자기 생각이 옳고 정답이라는 듯이 말하는 것 자체가 틀렸고 착각이라는 것이다.

결론은 새로운 그림체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또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을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냥 그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 어떤식으로 노력을 해도 결국은 다 자기만의 답을 찾아내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게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다보면 좋은 그림체, 개성있는 그림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이런 것도 있다.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그 이외에는 다 나몰라라 하라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내가 혼자 보려는 것이 아니니까. 결국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니까. 하지만 또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스토리와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지.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내가 맞춰서 생산하는 것만이 창작은 아니잖아?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때문에 나 자신에게 소홀해서도 안 되고, 나 자신에게 너무 집중하다가 세상 사람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천재는 애초에 자기 자신에게 걸맞는 옷 자체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천재라고 불리우는 것이겠지. 내가 병뚜껑을 쌓아서 아주 높게 올릴 수 있는 부분에 천재성이 있다고 해도 그게 세상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없으니 난 천재라고 불리지 못하지만,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 디자인을 만들었는데 그걸 세상 사람들도 다 예쁘다고 느끼면 그사람은 디자인의 천재가 되는 것이지.)

간단히 말해서 결국 내가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돼. 하지만 그렇다고 내 기준을 잃고 휘둘려서도 안 된다는 거야. 나와 세상의 접점을 찾아야 해. 막연하게 멋있어보이는 것을 따라하고, 누군가가 새로운 그림체 만들었다니까 나도 새로운 그림체 만들어보려고 하고 그런 것은 물론 그런 행동을 통해서 발견도 하고 발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휘둘렸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거든. 그냥 내 기준으로 더 잘 그리려고 노력한다는 그 것만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해. 물론 이렇게 해보다가 실패하고 저렇게 해보다가 실패하는 것도 아주 값진 경험이지. 그래서 나도 이런 결론을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야. 하지만 그러면서 낭비한 시간을 누군가는 낭비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면 더 낫겠다고 생각해.

얘기가 자꾸 길어지네… 어쨌든 결론은 그거야. 나 자신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정말 하고 싶은게 뭔지) 세상에 가치있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필요해하고 필요할 것 같은 것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가져야 해. 둘 중에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방향을 잃을 수 있는 거야.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새로운 그림체를 만들고 싶으면 그러려고 노력해도 된다. 그것도 의미가 있다. 라고 생각해. 하지만 진정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잘하는 것, 세상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덜 직접적이기 때문에 너무 나만의 그림체, 새롭고 독특한 그림체에 집착하면 안 된다. 라고 결론을 내리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사실 뭐든 해보고 부딧쳐야지 배우지. 내가 뭘 타고났고 뭘 하고 싶고 세상이 뭘 좋아하는지 처음부터 어떻게 알겠어. 뭐든 해보는게 정답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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