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잡담

둘다 논리가 없다. 빠는 그래도 긍정적이지 않냐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만 불편한 말을 하면 공격을 하는데? 단지 방향이 다를 뿐 똑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가수의 빠인 사람은 다른 가수의 까일 수 있다는 거야. 또는 빠였다가 까가 될수도 있다는 거야. 내가 말하는 건 팬인데 장난으로 빠라고 부르는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고 극성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적절한 선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것도 빠가 되지 않고 아무리 싫어도 까가 되진 않는다는 거야. 그러니까 비정상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다 똑같이 문제라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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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목표나 목적 그리고 결말, 결론… 물론 아무리 좋은 소재, 주제, 장르여도 그걸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못 풀어내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지. 그래서 나랑 맞는 장르를 선택해야 해. 이건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스토리는 아니거든? 하지만 이 막연해보이고 너무 포괄적인 이 전체적인 틀이 사람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볼지 말지를 결정하고 흥미를 느끼는 첫인상이라는 거야. 이게 새롭고 신선해야만 해. 약간 뻔해도 분명한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내가 생각해내는 것들은 좀 특이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이 재미있어할만한 싸움이나 연애나 성인물이나 드라마나 이런쪽으로는 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 자살하려고 하는데 못 죽는 주인공, 변태의 집… 약간 위험하다면 위험하고 정석적이지 않지. 그러니까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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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얽메이도록 태어났어. 그래서 사람을 덜 만나고 벽을 치고 혼자 사는게 나한테는 맞다는 생각이 들어. 또한 영향도 너무 많이 받아. 그래서 창작이든 뭐든 내가 정말 주도적으로 하려면 안 만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 가수 이소라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주변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폐쇄적으로 살게 됐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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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말 그대로 현상이다. 어디에서든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무한도전이 불편충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든 불편충은 있게 마련이거든. 당연히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예능은 그만큼 비정상인도 많이 끼어있게 마련이라는 거야. 그리고 모든 문제나 논란을 다 불편충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지. 무한도전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말이야. 무한도전의 가장 큰 실수이자 문제는 불편충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거겠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 다수의 여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나는 불편충에 대해서 욕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비정상인들이 꼬이는 하나의 현상일 뿐인 거야. (어떻게 보면 그 불편충들이랑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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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그 사람들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할 때가 있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수잖아. 그 존중이라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배려거든. 그런데 그걸 알아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해. 내가 도와주고 싶고 배려하고 싶어도 내가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못 도와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두가지 다 맞는 말인데 사람들은 어떤 한가지의 비중을 더 키우라면서 싸우는 거야.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히 핑계대지 말라면서 강요하고, 반대로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지. 결국은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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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동물이 땅에 떨어져있던 독약을 먹는 모습을 봤다고 치자. 그 독약의 효과가 퍼지기 전 몇십초간은 그 동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독약을 먹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슬픔,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독약을 먹지 않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결국 그 동물은 언젠가 늙고 병들 것이고 열심히 보살핀다고 해도 결국 어느정도의 고통을 받으며 죽어갈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나도 언젠가 늙을 것이고 병들고 고통받다가 죽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슬퍼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내가 정확히 딱 1년 후에 죽을 것이고 그 사실을 내가 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느낄지는 상상이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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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깊은 산골에 혼자 살면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면 마약을 하다가 병에 걸려 죽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모를테니까 처벌을 할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서 살아간다. 혼자 살아가고 있는게 아니고 여러명이 같이 연결되어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마약은 사회의 발전과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미 마약으로 사회가 병든 과거 역사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약이 불법이 된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문제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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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정부는 모든 것을 재논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당장 전공의들이 굶어 죽을 만큼의 커다란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정치적 목적,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이 119 구급차를 막은 택시운전기사와 뭐가 다를까? 이번에 정부에서 굽히고 들어간다면 국민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 의사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것들은 그 인질극이 성공하는 순간 제 2의, 3의 인질극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그들을 혼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어차피 꼭 한 번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겪는게 모두에게 더 이익일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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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사람이 모두 열등감과 불만족 때문에 노력했을까? 노력하는게 즐겁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거나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더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열등감, 불만족이 노력을 하는 계기나 원동력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계속 그것에 빠져서, 그것에만 집중해서 그것을 연료로 노력한다는 건 너무 불행하고 괴롭잖아. 시작은 열등감과 불만족 때문이었다고 해도 결국 내가 즐거워야지 계속 유지할 수 있겠지.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나?를 걱정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날 더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게 내가 노력해야겠지.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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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아주 열심히 답을 내려고 한다기보다도 그냥 계속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문득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어지거나 새로운 것이 떠오르고,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도 거기서 영감이 떠오르거나 하는 것 같다. 그냥 그 일을 해야지. 정도의 생각을 계속 하라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서 라면을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한다면 막연하게 맛있는 라면을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기존 라면에 딱 하나만 첨부했을 때 가장 맛을 살려주는게 뭘까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실제로 넣어본다거나, 이 라면은 면이 좋고 저 라면은 스프가 맛있는데 어떻게 하면 두가지 장점을 다 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본다거나 하는 것이다.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것도 계속 생각하다보면 답이 나온다. (라면은 그냥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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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탓을 하거나 조상탓, 우리나라가 이렇게 작은 것도, 약한 것도 모두 조상들이 부패하고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탓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부모탓을 하는게 아무 소용이 없다면 고마워도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잘 해준다면 고마워해야겠지만, 낳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야. 잘하면 고맙고 못하면 원망스러워해야 하는 거잖아. 어떻게 하든 일단 태어나게 해줬으니까 고마워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고 봐. 또한 그냥 낳고 보니까 내가 나온 것이지. 나를 선택했고 나를 낳으려고 고생한 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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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나 웃긴 것을 그리고 싶으면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못 웃기면 그게 잘못된 것이다. 난 자살에 대한 이야기,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그 의도 자체가 재미다. 나만의 의도의 재미에 집중해라. 갑자기 쓸때없이 다수가 추구하는 보편적인 재미를 추구하려고 하지 말아라. 또한 웃기고 싶다고 꼭 주인공이 웃어야만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캐릭터들은 심각해도 보는이는 재미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나 등장 캐릭터들이 심리가 막 변하고 절실하고 슬프고 그런 감정이 요동쳐야,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재미있겠지.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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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예의없는 행동을 했다고 치자. 그것을 지적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방법에서 내가 그 예의없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인지 더 나은 사람인지가 나뉜다. 막장드라마에서 사장의 사모님이 못사는 사람들한테 예의, 교양이 없다며 상대방을 무시하듯이 싸가지없게 말하는 장면이 종종 보인다. 이미 그 행동 자체가 예의, 교양이 없는데 누가 누굴 지적한단 말인가? (왜 화를 내냐고 화를 내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건가?) 남의 예의없음을 예의없게 지적하면 그 지적한 내용이 그사람에 어떻게 전달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예의없는 사람과 1도 다르지 않은 것이 된다. 나도 예의가 없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남의 예의없음을 예의있게 지적해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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