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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마찬가지였지. 결국 정치는 소통이다. 정부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정책으로 만들거나 해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거잖아. 그런데 정치인이, 대통령이 소통을 잘 하지 못하고,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물론 토론, 소통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맞을 것이다. 또한 말을 제대로 못 해도 다른 방식을 통해서라도 전달하려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는 있어야 한다. 또한 들으려는 의지가 보여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도대체 어떻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정치인이든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고 뭐가 문제인지 더 알기 위해서라도 서로 대화, 토론, 소통을 하고 싶어해야 정상 아닌가? 그 토론 안에 서로를 비방하고 말빨과 태도로 상대방을 공격해서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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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랑 똑같은 거랄까?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가 않는 거야. 못난 심성, 열등감, 그런 부분들이 고치고 싶어도 안 고쳐지는 거야. 남의 조언 잘 듣고 자존심 세우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남을 진심으로 위하고… 남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런 게 잘 안 된다고… 그래서 그런 인싸? 그런 것에도 열등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외모 뿐만이 아니고 생각이나 마음 같은 것도 사실은 개조가 불가능해. 그저 속이거나 노력하고 배우고 알아가고 성장하고… 뭐 그런 것이겠지. 어쩌면 외모가 더 바꾸기 쉬운 부분인지도 몰라. 꼭 그런 것을 부러워만 하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의 강점을 살려야겠지. 다른 부분이랑 마찬가지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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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리퍼는 양면 슬리퍼를 선호할 정도로 게으르지만, 밥을 먹고 나서 그릇 옮기는 건 무조건 여러번에 나눠서 한다. (약간 운동하려는 목적도 있고 그릇을 떨군나거나 하는게 너무 싫기 때문인듯.) 결국 사람을 뭔가 하나로 아주 단순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사람이구나. 아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뭐든 다 리스크 따져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야. 게을러서 그냥 막해. 단지 리스크가 너무 큰 것은 피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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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리거나 하는 생각은 낭비라는 생각이 안 들잖아. 그 자체로 행복하니까. 그런데 내가 어떤 안 좋은 마음에 계속 휩쌓이는 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 뭐 물론 그런 마음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만 그 다음이 있다고 할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 하지만 그래도 쓸때없이 그런 생각에 얽메이게 되는 것 같다면, 나의 지금의, 나중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구체적인 다른 일 같은 것을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 그게 노력하면 되거든. 일에 빠져서 집중하다보면 다른 생각은 안 들게 되거든. 그러니까 뭐든 해야지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별것 아닌 거라도 진짜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야 하는 것 같아. (사실 할 일은 너무 많지. 꼭 돈을 버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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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병이라는게 있다. 내가 이 부분에 쿨하면 남도 쿨하라고 강요하면서 그게 쿨한 건줄 착각하는 것이다. 그건 쿨한게 아니고 이기적이고 멍청한 것이다. 정말 쿨한 사람은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도 남이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면 기꺼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일 것이다. 뭐든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라는게 아니다. 타인의 개인적인 성향을 내가 굳이 침범하고 참견하고 강요하려고 들지 말라는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 한가지 더 중요한 부분, 관점이 있다. 그런 보통 사람들의 배려를 이용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해달라며 이기적으로 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타인에게 무리하게 참견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듯이, 타인도 나에게 무리한 참견, 요구, 부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굳이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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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보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심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 남녀 심사위원 수를 동등하게 맞췄다고 치자. 그러면 과거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남성 심사위원들이 성별을 구분지어서 심사를 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성별에 차별을 두는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심사위원중에 페미가 있다면 어떨까? 과연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생각할까? 왜 페미 심사위원은 여성에게만 더 좋은 점수를 줄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페미니즘의 핵심 문제는 그것이다. 다른 부분에서의 차별, 또는 과거의 여성들이 받았던 차별까지 꺼내면서 당장 여성의 특혜를 요구하고, 남성에게 차별적인 판단을 내려버린다는 것. 페미니즘은 무조건 모든 것을 성별로 판단하려고 들고, 여성에게 편파적인 것을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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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개고기 찬성 반대를 질문하는데 식용개가 있지 않냐는 대답은 대답이 될 수 없다. 개고기를 반대한다면서 식용개는 먹어도 괜찮다는 소리인가? 개고기를 찬성한다면 굳이 식용개라는 차별적인 발언을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 식용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단지 식용으로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지. 먹어도 된다고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의미로 허락을 받은 종이 아니다.(그런 종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식용으로 정해진 종이라고 해서 다른 종보다 멍청하다거나 뇌가 없거나 하지 않다는 말이다. 똑같은 생명이다. 식용으로 불리는 종도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키우면 애완동물이 되는 것이고, 대다수가 애완동물로 키우던 종도 키우기 쉽고 맛있고 살이 많아서 먹기 위해 키우기 시작하면 식용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어도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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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잔하게 굴지 말라고? 뭐 그런 걸로 화내냐고? 무슨 돈이나 그런 것을 요구한다거나 감옥에 가야 한다면 부정할 수 있지. 하지만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고 말하고,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요구한다면 그렇게 해주는게 맞지 않아? 그걸 못 해주는게 진짜 쪼잔한 거 아니냐는 거야. 왜 사과도 못해? 남이 상처 입었다잖아. 대범하면 내가 이해 못해도 남의 힘듦을 인정해줄줄 알아야지. 고작 자기 자존심 챙기겠다고 사과를 못해? 남을 쪼잔한 사람으로 만들어? 누가 진짜 쪼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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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 눈치보는 판사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 판사들이 핵심이죠. 그들 때문에 페미라는 피해의식에 빠진 여성들이 나왔다고 할수도 있을테니까요. 다시 말하면 어떤 판사는 성폭행 범죄자를 엄청나게 가볍게 처벌해서 여성들을 화나게 하고 또 어떤 판사는 페미에 휘둘려 죄 없는 남자를 유죄로 만들어서 남성들을 화나게 하죠. 성갈등의 근원 중에 하나가 판사의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판사들한테 요구해야 할 것은 페미에 휘둘리지 마라 남자편 들지 마라 이런 얘기가 아니고 판결문 온라인 공개 같은 판사 자체의 기본 수준 상향의 방법 모색이라고 봅니다. 결국 판사들한테 요구한다기보다 법을 바꿔야 할테니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겠죠. 그리고 남자들이 성차별을 괜찮다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남자를 제외하고 성차별 해소를 얘기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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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누가 살아남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들을 기준으로 세상은 정의된다. 그러니까 누가 살아남아서 세상을 인식하고 정의하느냐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들은 세상을 인식하지도 정의하지도 못한다. 한 명이 나머지 인류를 전부 죽인다면 그 한 명이 세상을 정의한다. 그것이 곧 세상이 된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나와 똑같은 소중한 생명이고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세상을 바라봐야 세상인 것이고 내가 그들을 나와 같은 존재로 봐야 그들도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정의를 내리는 것이지. 원래 그런 것은, 원래 그런 존재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죽고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죽는 것도 의미있지만 내가 살아남는 것도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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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에 그런 글을 썼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 우리는 매 순간을 죽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말이다. 결국 내 뇌를 어딘가에 업로드해서 내가 죽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그것을 더더욱 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적으로나 객관적으로는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기존의 능력을 그대로 발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보면 그것은 내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내 몸 그대로여도 내가 계속 죽고 기존의 정보에 대한 기억과 특징을 유지한 새로운 내가 이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더더욱 나의 정보를 다른 무엇인가에 입력한다는 것을 진짜 나라고 생각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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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비라고 잘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안84의 발언이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다. 예술이란 뭘까? 그냥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어떤식으로든지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대중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대중이 알아서 할 일인 것이다. 솔비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면 되고, 지금과 같은 좋은 반응이 없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냥 취미로 하는 수준이거나 흥미를 잃고 하지 않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대중의 반응이 좋았잖아. 그러면 그냥 좋은 거야. 연예인이 취미로 소소하게 예술하고 대중에게 인기가 없었으면 이렇게 참견을 했을까? 아니잖아. 그런데 지금은 왜 문제삼는 거야? 솔비가 예술가로 잘나가니까. 그렇게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잘나가니까. 결국 열등감, 질투 때문에 문제삼는 것이지. 실력은 명확한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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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법이 더 낫다는 이유로는 강요하면 안 돼. 분명하게 문제가 있는 것만 문제삼을 수 있고 잘못이니까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 있는 거야. 사실 그 기준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참견이나 강요는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는 거야. 강요나 참견을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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