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기 쉽지만,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

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유튜브 영상을 볼 때도, 스트리밍 방송을 볼 때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되게 예민하게 반응해. 나만큼 예민하지 않고 너무 쉽게 말을 뱉어버리는 사람, 조심스러움이 떨어지고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바로 관계를 단절시켜버려. (사실 그러면서 나는 타인을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주느냐? 별로 아닌 것 같아…) 나는 내가 쪼잔하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내 자유잖아. 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것을 보고 말고는 내 자유가 맞잖아.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말이야.

서론이 길었는데, 핵심은 그거야. 내가 어떤 것이 불만스럽고 불편하다고 했을 때 그게 무조건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거야. 나는 어떤 때는 이게 진짜 문제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또 어떤 때는 나에게 문제가 있고 내가 쪼짠해서라는 것을 안다는 거야. 그렇다고 내가 반성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굳이 억지를 부려서 상대방을 공격하고 문제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그런데 페미니즘이나 피씨에서는 그런 변별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어. 내가 불편하면 굳이 문제를 억지로 찾아내고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거야. 그게 정말 위험한게. 그게 바로 차별의 원동력, 근원이거든… 성적 취향, 피부색, 나라 등등을 차별하는 것에 구체적이고 상식적인 이유가 존재한다고 생각해? 정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냥 문제가 있는 것이지 차별하는게 아니지. 문제가 없는데 굳이 억지스러운 이유를 대서 문제가 있다고 하는게 차별이라는 거야.

예를 들면 게이를 반대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이유 중에 “게이 때문에 에이즈가 퍼진다, 결혼이나 출산률이 떨어진다” 같은게 있잖아. 에이즈는 콘돔을 안 껴서 그런 거야. 이성끼리도 항문성교는 가능해. 그리고 이성애자도 결혼 안 하고 출산 안 하는 사람 많아. 또는 “게이는 문란하다?” 문란한 이성애자는 없을까? 나는 문란한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문란한게 문제라면 문란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어야지. 왜 게이를 문제삼냐는 거야. 게이를 반대하고 차별하는 이유가 모두 억지스러울 뿐이라는 거야.

어째든 페미니즘이나 피씨라는 차별을 해소한다는 집단의 사람들이 오히려 차별의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불편하고 불만스러워도 그 이유가 나한테 있을 수 있고, 문제가 있어도 크지 않아서 그냥 내가 지나쳐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해. 뭐든 문제로 만들어서 싸우고, 못하게 막고, 상대방을 차별주의자로 만들어서 공격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건 인권운동이 아니고 폭력이고 마녀사냥이야. 그런 착각하는 것을 경계해야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어? 너 내 말에 동의 안 해? 우리를 안 지지해? 너 차별주의자!” 이러고 있다는 거야. 그게 과거의 “너 정부 비판해? 너 종북!” 이거랑 뭐가 다르냐는 거야. 또는 “너 신 안 믿어? 너 사탄!” 이거랑 뭐가 다르냐고… 차별을 해소하려고 한다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거야. 내 스스로 또다른 차별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를 신경써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차별 해소라는 거창해보이는 것으로 옮겨갔을 뿐이지. 하는 행동이나 태도는 종북 몰이, 종교 강요, 또는 악플러에 불과한 사람들이 보인다는 거야. 그러니까 정말 차별 해소를 위한게 아니고 그냥 내멋대로 누군가를 공격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마녀사냥을 하는 방법 중에 하나로 페미니즘이나 피씨의 이름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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