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년 버튼”이라는 만화를 봤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한글로 번역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합법은 아닌듯.)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어떤 버튼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
그 버튼을 누르면 나는 가상의(?) 공간에 5억년간 갇히게 되는데, 5억년이 지난 후에 나는 그 5억년간의 기억을 잃고 다시 버튼을 누르는 순간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 보면 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그냥 천만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화의 내용은 그 버튼을 알게 되고 누른 후에 어떤 공간에 갇힌 주인공이 5억년을 보내며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만약 나에게 5억년 버튼을 누를 것이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당연히 누르지 않을 것이다. 또다른 내가 5억년동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미칠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 같다.
유튜브에서 본 어떤 철학자? 아저씨는 누를거라고 하더라. 그 아저씨는 돈 보다는 5억년이라는 시간동안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돌아왔을 때 기억은 못 하겠지만, 어쨌든 그 5억년의 시간을 보낸 나는 존재하긴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 5억년이라는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은 누르는게 맞겠지.
나는 이 만화를 보면서 애플티비의 “세브란스: 단절”이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애플티비 무료 체험 기간을 이용해서 본 드라마인데 내용을 요약하면 어떤 기업이 있는데 거기서 일하는 시간동안의 기억을 잃게 된다. 또한 그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의 나는 내 삶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독립적인 존재로 그 회사 안에서 지내게 된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그 회사 안에서 일하는 또다른 나라는 존재는 일상이나 그런 것이 전혀 없이 평생 일만 하다가 외부의 내가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사라지는 정말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시즌1은 완결이 났고 시즌2를 제작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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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은 분명히 내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상황에 처해지는데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그리고 세브란스는 나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일한다는 것이고(완전한 단절) 5억년 버튼은 5억년을 온전한 내가 버텨야 하고 그 과정을 돌아온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다르다.
“돈 같은 물질적인 것을 위해 또다른 나를 학대시켜도 되는 것인가?” 뭐 그런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와 개꿀인데? 그냥 하면 되지 그게 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만화든 드라마든 보다보면 사람 할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그게 내가 아닌 건 아니잖아.
그것은 내가 아니라고 할수도 있거든? 하지만 생명이 아닌 건 아니잖아. 오히려 나와 비슷한? 나와 마찬가지의 존재이니까 더더욱 그러면 안 되는 것이지.
사실 이 세상에는 고통받고 굶주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저 그것을 나를 포함한 대부분은 외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그 고통받고 굶주리며 살아가는 사람중에 한명이 됐다가 돌아온다면, 내가 그것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일이라고 쉽게 외면하고 넘기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남들의 고통에도 감정이입을 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소재나 스토리가 아닌가 싶다. (그걸 보고 느꼈다고 당장 내가 기부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회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겠어?) 또한 진짜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기억인가? 육체인가?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현재 나의 기억조차도 사실 완벽한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애초에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불완전한 존재를 나라고 인정한다면 기억에 없는 나도 진짜 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할수있다.
그러니까 미래를 위해서 지금 힘들어도 고생하자라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심한 고통을 겪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평생동안 너무 고통스럽거나 불행하거나 후회하는 순간이 없게 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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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또는 보고 나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더라. “나는 이 허무한 삶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나는 꼭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기 싫으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야 생각의 폭이 넓어지게 되고 더욱 내가 사는 이유에 대해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고민하고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몸뚱아리의 취향에 나를 맞추는게 최선인 것 같다. 내 몸이 편함, 행복함을 느끼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거 말고 뭐가 더 있겠어?)
그것은 이런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떤 한가지를 매우 의미있게 생각한다면 그것조차도 사실은 정신적인게 아니고 신체적으로 내 몸, 내 뇌가 그것에 끌린다는 것이다.
그저 뇌가 전기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모든 선택은 사실 대부분 내 몸에서 그것에 끌리도록 만들어진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생각이랑 육체는 따로 떨어진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나 정신이나 영혼이라고 생각되는 그 모든 것이 육체에 종속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에도 했던 말인데,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현실에 적응해서 돈 잘 버는 일 선택하는 사람. 둘다 자기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거라니까?
누구는 이상적이고 이기적이라거나 누구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서 다른 판단을 내리는게 아니라는 거야! 다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내리고 산다는 거야.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선택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긴 하겠지.)
다시 말해서 사람은 그저 자기가 아는 정보와 끌리는 가치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할 뿐인거야. 이성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그 이성적인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이유가 감성적인 이유일 수 있다는 거야.
신기한 것은 그렇게 내 모든 선택이 사실 내가 결정한게 아니고 그저 타고난 본능이자 육체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나의 존재의 한계를 인정해버리면 훨씬 더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그러니까 오히려 정말 나의 생각과 육체에서 벗어나서 내가 독립적인 영혼같은 것이 되어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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