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추구도 감정에서 비롯된다 – 외모지상주의와 아이폰

감성과 이성, 그리고 인간의 판단

이성적인 판단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이성적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는 대체로 감정의 영향을 배제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과연 이성적인 판단은 정말로 감정과 무관할까요? 아니면 이성마저도 결국 감정적인 끌림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예를 들어, 쿠키를 먹는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지금 당장 한 개를 먹을 수 있지만, 1시간 후에는 두 개를 먹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1시간을 기다려 두 개를 먹는 사람을 우리는 “이성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더 많은 물리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동이 왜 이성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일까요? 단순히 기다리는 선택이 본인의 만족감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이라면, 이는 결국 감정적인 끌림이 바탕이 된 선택 아닐까요?

이성적인 판단에도 감정이 깔려 있다

우리가 흔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사실 이성적인 판단 자체에 끌림을 느끼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조차 감정적인 만족감에서 기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성적인 판단은 존재할 수 있어도,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답정너와 직관, 그리고 문제 해결

많은 사람들은 어떤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증거를 찾는 태도를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이는 흔히 “답정너”로 비판받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방식이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리 답을 정해놓고 근거를 찾는 것은 오히려 인간의 직관을 활용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문제는 답을 정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정해진 답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려는 태도에 있다고 봅니다.

감성과 이성의 현실적 조화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도 쉽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판단은 현실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무조건 이성을 고집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끌리는 외모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미적 감각과 호불호는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능적인 특성입니다.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것은 문제지만, 첫인상에서 외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현실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성과 감성, 그리고 사회적 관점

이성과 감성은 사회적 관점에서 형성된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사는 사람들을 감성적이라고 비아냥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비판하기 전에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아이폰이 더 성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기분 좋음은 이성적으로 보더라도 큰 이익일 수 있습니다. 불편함 없이 삶의 질을 높이는 선택은 과연 감성적이라 폄하될 수 있을까요?

결론: 이성과 감성의 경계는 모호하다

결국, 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완전히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은 겉보기에는 이성적일지라도, 그 밑바탕에는 감정적 끌림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중요한 것은 이성적이냐 감성적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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