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딜레마는 윤리적 딜레마로 전차가 선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그대로 두면 앞에 있던 5명이 치여 사망하고 선로를 바꾸면 1명이 죽는다.
결과적으로 더 다수를 살린 것인가, 내가 1명이라도 사람을 죽이는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므로 그냥 내버려둬야 하는가로 나뉘게 된다.
상황을 조금 바꿔보면 5명이 탄 브레이크가 고장난 전차가 벽을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대로 두면 5명은 죽을 것이다.
이때 옆에 있는 사람을 선로로 밀어서 전차의 속도를 줄이면 한명은 죽겠지만 5명은 살릴 수 있게 된다.
처음의 딜레마에서는 그저 선로를 바꾸는 것이었다면 두번째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사람을 밀어서 죽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5명을 범죄자로 적용해 볼 수도 있고, 5명이 100명이 될 수도 있고, 1명을 지인이나 가족으로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런식으로 계속 사회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고 나는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이게 정답인 것 같다.
나와 친한 지인이나 가족과 다수의 사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내가 덜 책임지고, 처벌받고, 사회적으로 덜 지탄받는 방향으로 선택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 중에 하나는 나는 무조건 둘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한명을 죽이기 싫어서 열차 선로를 바꾸지 않고 5명을 죽게 하는 선택을 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5명이 죽도록 선택한 것이 된다.
내가 그 열차에 없었다는 가정은 그저 가정일 뿐이다.
그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며, 비겁한 태도라는 것이다.
또한 5명을 소매치기나 도굴꾼 같은 범죄자들로 바꾸면 1명을 살리는 선택을 하기 쉬운데, 사실 소매치기나 도굴꾼은 아주 심각한 범죄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그런 범죄로 그 사람을 범죄자로 쉽게 정의해버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딜레마, 정답이 없는 문제다.
답을 내리려고 만든 문제가 아니고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고민을 다수의 사람들이 한 번씩 해보게 만든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사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지만 나는 내 입장에서 어차피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선택으로 인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예를 들어 한명과 다섯명이 아니고 한명과 백명이라고 쳐도 무조건 백명을 살리는 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 한명이 똑똑한 천재라서 수천만명을 먹여살릴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트롤리 딜레마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예산을 굶주린 국내나 해외 아이들을 위해 쓰는게 낫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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