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gryeo

당연히 많은 정보가 들어오기 전에는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단지 선입견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강요하려고 들고 참견하려고 드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니까 선입견을 갖는 것이 좋은 태도는 아니지만,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것이다. 선입견을 고집하지 않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타당한 생각에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태도만 있다면 선입견 자체는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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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보통은 시각의 차이일 뿐이다. 아무나 괜찮으니까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는 말도 결국 그 안에 나의 최소한의 취향, 기준이 포함되는 것이고 반대로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랑만 사귈거야! 라는 말도 내가 궁하면 아주 조금은 내 기준에 모자라도 사귈 수 있다는 것이다. “물이 이제 조금 밖에 없네?”와 “물이 아직 많이 있네?”의 차이와 똑같은 것이다. – 설득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둘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했을 때 둘의 말이 다 옳을 수 있다. 단지 누가 더 설득력있게 말해서 사람들을 설득시키냐의 차이일 뿐이다. 더 좋은 방법이 더 설득력이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더 와닿게 표현하거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과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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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나 말싸움에서 내가 이기는 것, 싸우거나 대립하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내 기분이 좋자고 내가 하고싶은대로만 한다면 그것은 오직 나를 위한 행동이 될 뿐이다.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을 가졌다면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장의 내 기분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완벽하게 결말을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결말이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와야만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분과 본능에 휩쓸려서 내가 원하는 결론을 내려는 노력조차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스토리도 마찬가지다.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를 알아내고 결정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고 독자들이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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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따분하고 평범한 일상, 또는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UFO나 재난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판타지, 공상과학 영화를 보고는 하잖아? 그것처럼 과학자들이 우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평범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러니까 객관적인 증거만을 믿는 과학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보면 만화나 영화 같은 재미, 자극을 받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그런 직종을 선택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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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구성 시작부터 결말을 정해야 한다. 또한 막연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좋은 소재나 발상이 있어야겠지. 자살소년은 자살을 하고 싶은 주인공이 과연 자살을 성공할 것인가를 정해야겠지. (그런 결말이 나온 이유도) 구체적인 과정 주된 내용의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자살소년은 자살을 하는데 계속 실패하는 과정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자살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과정) 시도 전체 구성에만 집중해서 짠 이후에 그 사이사이에 재미난, 자잘한 에피소드를 끼워넣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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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 번에 완벽하게 완성시킨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다. 진행이 더딜 가능성도 크다. 반대로 계속 수정할 것을 염두에 두고 너무 대충 하면 제대로 완성이 안 돼서 완전 다시 만들어야 할 가능성도 크다. 타이밍도 마찬가지다. 스토리를 완벽하게 완성한 후에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하면 진행이 너무 더딜 것이다. 반대로 너무 섣부르게 그림을 시작하면 스토리부터 완성도가 떨어져서 나중에 마무리를 제대로 못한다거나 다 갈아엎어야 할수도 있다. 중요한 부분은 당연히 다 잘 짠 상태에서 그림을 시작해야 하고 단지 다 짜놓고서 모자란 부분 없나? 라면서 멈춰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변별력이 가장 중요하다. 제대로 된 판단. 신중하겠다며 멈춰있어도 안 되고 너무 섣불러서도 안 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당장 내가 만족할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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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소통과 메세지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분에서 세상과 내 생각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말하고 표현할 뿐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쓸때없이 남에게 강요하거나 완벽하게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시간, 에너지 낭비고 폭력이고 마녀사냥이다. (나도 그래왔던 것 같다.) 또한 그렇게 단지 내가 아는 것만 전달하고 내 생각을 전달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오히려 설득력이 더 높아질 것이다. 쓸때없이 너무 설득하려고 들면 거부감만 들 것이다. 내 개인적인 삶은 삶으로 보고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 창작은 그것 그대로 봐야 한다. 그 두가지를 잘 분리해야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성매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걸까? 개인적인 삶의 부분을 돈에 파는 것이니까?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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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라는 존재가 한 개인을 신경쓴다거나 의미있게 바라본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이 인간처럼 사람마다, 생명의 종류에 따라 개별적으로 신경을 쓴다면 그순간 그는 신이 아닌 그저 힘이 좋고 초능력이 있는 하나의 인간에 불과하다는 거야. 시간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것 같아. 인간에게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는 이유는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인 거야. 우주의 돌은 인간에 비해서 무한대의 시간을 살아가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사실 돌일 뿐이잖아.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돌처럼 무생물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결국 신이 완전한 존재이려면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돌과 같은 존재여야 한다는 거야. 신의 존재를 아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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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한다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두려워하는 것 같다. 거절하는 것도 상대방의 자유이고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다. 만약 연인이 바람을 피운다면 그것 또한 내 잘못이 아니다. 물론 내가 소홀했던 부분이나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부분을 후회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내 개인의 문제이지. 그로 인해서 바람피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실제로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연인이 바람을 피운다거나 친구가 사기를 친다거나 하면 나는 안 좋은 사람을 잘 걸렀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괜히 내 잘못으로 돌려서 나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그런 충격이나 상심하는 것을 걱정해서 애초에 사람을 못 만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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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 논란을 주호민은 시민 독재 시대라고 평했다. 나는 그들을 시민이라고 부르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악플러일 뿐이다. 그런 악플러들이 점점 늘어난 것도 문제겠지만, 그 악플러들을 여론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악플러는 커뮤니티나 게시판이 주 서식지이다. 그래서 여론을 만드는 장소에서 날뛰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크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보통 사람이 훨씬 더 다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악플러들은 그 행위를 즐기기 때문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유재석 만큼의 팬을 가진 연예인이 아니라면 보통은 악플러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해도 굳이 반박하는 글을 쓰는 수고를 하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숫자가 많기 어렵다는 것이다.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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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하기 싫은 것을 할 필요는 없다. 싫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조금 거슬리거나 삐졌다고 안 보려고 하는 것은 그저 쓸때없는 고집일 뿐이다. 세상 사람 모두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친하게 지내고 서로 도울 필요도 없지만, 내 옹졸한 마음까지 정당한듯이 생각하며 대부분의 것을 배척하며 살아가면 이 세상이 너무 좁게 느껴질 것 같다. 조금 마음에 안 들고 불편해도 한 번 해볼 수도 있고 도울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넓은 마음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대단한 도움을 주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쓸때없는 고집을 피우며 살아가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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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을 따라갈 자신도 없고 멋있어보이고 부러운 것도 없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소박한 성공을 이루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저런 성공도 있을 수 있구나. 나름 괜찮아보이네.” 이런 느낌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내식대로 사는 삶을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은 거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을 똑같이 추구하고 싶지도 않아. 내식대로, 내멋대로 살고 싶지만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형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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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볼 때 오직 몸으로만, 성적으로만 봐선 안 되는 것처럼 반대로 오직 그사람의 성격이나 그 이외의 것으로만 봐야 한다는 것도 억지야. 지금 페미는 그런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 이 세상에 외모를 안 보는 경우가 어디있냐? 단지 취향이 다르고 외모를 보는 비중의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떻게 조그만 잘못을 단 하나도 안 하고 살아가겠어. 그런데 페미는 이 세상의 거짓말을 모두 없애자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면 어떻게 여자 아이돌이나 그런 부분들을 성 상품화라고 공격할 수가 있겠어? 작은 잘못이더라도 일단 잘못이니까 문제야! 고쳐야 해! 이런식으로 말이야.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어. 인간이라는 동물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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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목표나 목적 그리고 결말, 결론… 물론 아무리 좋은 소재, 주제, 장르여도 그걸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못 풀어내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지. 그래서 나랑 맞는 장르를 선택해야 해. 이건 본질적이고 구체적인 스토리는 아니거든? 하지만 이 막연해보이고 너무 포괄적인 이 전체적인 틀이 사람들이 가장 처음 접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볼지 말지를 결정하고 흥미를 느끼는 첫인상이라는 거야. 이게 새롭고 신선해야만 해. 약간 뻔해도 분명한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내가 생각해내는 것들은 좀 특이하지만 아주 흥미로운 건 아닌 것 같아. 사람들이 재미있어할만한 싸움이나 연애나 성인물이나 드라마나 이런쪽으로는 할 능력이 없는 것 같아. 자살하려고 하는데 못 죽는 주인공, 변태의 집… 약간 위험하다면 위험하고 정석적이지 않지. 그러니까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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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든 대기업이든 그런 곳에 남녀 비율을 따지는 건 너무 비상식적인 거야. 예를 들어 마르고 외소한 사람과 키 크고 살집이 있는 사람들로 나눠서 본다고 치자. 어떤 회사에서 직원의 통계를 내봤더니 크 크고 살집이 있는 사람이 95%나 되네? 그러면 그 회사는 몸집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회사일까? 그건 결과론적인 얘기일 뿐이야. 또한 키가 크고 살집이 있는 사람이 하기에 적합한 일일 수도 있어. 그것을 무조건 몸집 차별이라고 몰고 가는 건 비상식적인 짓이지. 그런데 페미는 자기들이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남녀 성비를 따져서 남자가 많으면 차별로 몰아가서 여자라는 성별을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해. 그게 현실이라고… 진짜 차별이라는 얘기를 하려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야지. 여자가 어떤 회사에 들어가려고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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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말 그대로 현상이다. 어디에서든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무한도전이 불편충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든 불편충은 있게 마련이거든. 당연히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는 예능은 그만큼 비정상인도 많이 끼어있게 마련이라는 거야. 그리고 모든 문제나 논란을 다 불편충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지. 무한도전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말이야. 무한도전의 가장 큰 실수이자 문제는 불편충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거겠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진짜 다수의 여론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어쨌든 나는 불편충에 대해서 욕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냥 비정상인들이 꼬이는 하나의 현상일 뿐인 거야. (어떻게 보면 그 불편충들이랑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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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는 없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그 사람들을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할 때가 있어.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필수잖아. 그 존중이라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배려거든. 그런데 그걸 알아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해. 내가 도와주고 싶고 배려하고 싶어도 내가 너무 괴로워서 도저히 못 도와주는 부분도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 두가지 다 맞는 말인데 사람들은 어떤 한가지의 비중을 더 키우라면서 싸우는 거야.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히 핑계대지 말라면서 강요하고, 반대로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지. 결국은 개개인에게 자신만의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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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그런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채식주의자들이 그렇다. 나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나 육식을 야만적이라고 말하는 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이고,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생명을 덜 죽이고 덜 고통스럽게 하려는 노력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위선이나 허상, 거짓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공감을 하는 동물이다. 내가, 내 주변의 인간이 슬퍼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아주 본질적인 것이다. 꼭 물질적인 이익이나 먹는 즐거움 같은 것만이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이 소중해서, 생명을 존중하는게 옳아서라기보다는 인간이 그런 다른 동물의 고통을 상상하고 바라보며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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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동물이 땅에 떨어져있던 독약을 먹는 모습을 봤다고 치자. 그 독약의 효과가 퍼지기 전 몇십초간은 그 동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독약을 먹는 모습을 본 순간부터 슬픔,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독약을 먹지 않아도 마찬가지 아닌가? 결국 그 동물은 언젠가 늙고 병들 것이고 열심히 보살핀다고 해도 결국 어느정도의 고통을 받으며 죽어갈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나도 언젠가 늙을 것이고 병들고 고통받다가 죽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슬퍼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내가 정확히 딱 1년 후에 죽을 것이고 그 사실을 내가 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느낄지는 상상이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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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은 일정 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틀린 것 같다. 깊은 산골에 혼자 살면서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도 모를 때 마약을 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고 하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여러 사람들과 살면서 내가 마약할 자유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 문제겠지. 내가 자살을 하든, 내 몸을 망치든 내 자유니까 마음대로 하게 놔두라고 사회에 인정해달라는 것이잖아. 마약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사회에 영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 사회의 입장에서는 사회 자체의 건정성? 유지, 발전을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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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정부는 모든 것을 재논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당장 전공의들이 굶어 죽을 만큼의 커다란 위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정치적 목적,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목숨을 인질로 삼고 있다. 이것은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이 119 구급차를 막은 택시운전기사와 뭐가 다를까? 이번에 정부에서 굽히고 들어간다면 국민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 의사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것들은 그 인질극이 성공하는 순간 제 2의, 3의 인질극을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그들을 혼내줘야 한다는 것이 아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어차피 꼭 한 번 겪어야만 하는 고통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겪는게 모두에게 더 이익일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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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사람이 모두 열등감과 불만족 때문에 노력했을까? 노력하는게 즐겁고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다거나 내가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더 노력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열등감, 불만족이 노력을 하는 계기나 원동력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계속 그것에 빠져서, 그것에만 집중해서 그것을 연료로 노력한다는 건 너무 불행하고 괴롭잖아. 시작은 열등감과 불만족 때문이었다고 해도 결국 내가 즐거워야지 계속 유지할 수 있겠지.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대방이 날 좋아하지 않나?를 걱정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고 날 더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게 내가 노력해야겠지.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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