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서 트롤리 딜레마에 관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해당 영상은 철학적 사고실험으로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영상은 제가 정의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과거 저는 정의를 단순히 사회가 만든 도구로,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의란 결국 그 사회의 입장에서 무엇이 “정답”인가를 고민하고 찾아내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정의를 논의하기에 매우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딜레마에서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한 명을 희생시켜 다섯 명을 구할 것인가?”입니다. 여기서 한 명보다 다섯 명의 목숨이 더 “값지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한 명과 다섯 명의 생명이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후자에 동의합니다.
숫자가 달라지면 달라질까?
그런데, 다섯 명이 아니라 500명이 된다면 어떨까요? 이는 단순한 숫자 싸움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도 값지지 않다고 말할 수 없듯이, 다수의 생명도 경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질문은 우리에게 도덕적 딜레마를 넘어 사회적 관점에서의 책임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댓글에서 흥미로운 의견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이는 철로를 바꾸지 않는 이유로, “철로를 바꾸어 한 명을 희생시키면 죄책감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아무 선택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점은 마치 자신이 철로를 바꿀 권한이 없는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열차 안에서 철로를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상, 선택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입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단순한 자기 위안에 불과합니다. 결국, 선택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두 번째 딜레마와의 연결
이와 비슷한 사례로 두 번째 트롤리 딜레마가 있습니다.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직접 밀어 열차를 멈추는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직접적인 행동을 꺼립니다. 이는 행동의 적극성과 직접성이 도덕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 댓글을 단 사람은 철로를 바꾸는 것도 적극적인 행동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철로를 바꾸는 행위는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한 간접적인 선택일 뿐, 한 명을 밀어 떨어뜨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중요한 점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임과 선택
철로를 바꾸지 않는 이유를 “한 명의 생명도 다섯 명의 생명보다 덜 값지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책임을 지는 것이고, 이는 소신 있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댓글처럼 선택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고 후회를 줄이기 위한 억지에 가깝습니다.
결론: 개인의 소신 vs. 사회의 관점
결국, 이러한 딜레마는 개인의 소신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보자면, 다수를 살리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정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의의 본질은 결국 우리가 속한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트롤리 딜레마는 정답을 찾기 위한 실험이라기보다, 각자의 가치관과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