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다르다. 노력은 만능이 아니다. 수능의 문제점

오랜 기간 동안 메모했던 수능 시험, 노력, 사람의 특성의 다양성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해봤다.

수능의 문제점

존리| 공부 못하는 아이는 다른 데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래요

출처 : ′동학 개미 운동′의 시초 존봉준(?) 아이에게 필요한 건 주식? | 유 퀴즈 온 더 블럭 YOU QUIZ ON THE BLOCK EP.55

사교육에 매년 수십조가 쓰인다고 한다. 진짜 쓸모있는 교육이면 그 이상이 들어가도 상관 없겠지. 하지만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수능 성적을 받기 위한 사교육… 도구를 위한 도구를 위한 도구일 뿐인데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낭비라는 거야. 아이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 아이를 공부시키고 학원을 다니게 하잖아. 그런데 몇프로나 원하는 상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냐는 거야. 아이가 성공하고 돈을 잘 벌게 하려고 공부를 시키는데 사실 돈을 버는 건 학원이잖아. (도박장에서 도박을 해서 돈을 따는 사람은 극소수고 잃는 사람은 대다수고 진짜 승리자는 도박장 사장인 것처럼…)

그리고 아이가 커서 행복하길 바란다면서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학대에 가까운 고생을 시키는게 맞는 걸까? 아무리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안정적이고 높은 수익과 같은 좋은 보상이 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그 길을 가는게 맞냐는 거야.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수는 도전하는 사람의 수에 비해 너무나도 적고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야. 공부에도 소질이나 재능이 필요해. 더 잘하는 애가 있고 못하는 애가 있어. 문제 이해력이나 암기력도 다 같을 리가 없잖아. 그런 부분은 안중에도 안 두면서 무조건 하라고만 강요하고, 노력하면 다 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실패하면 노력 부족으로 매도해버리잖아.

부모님이 시키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성실한 거고 다른 것을 하려고 하면 딴짓을 하는 거야? 아이를 그렇게 아낀다면서 아이가 가져오는 성적표 하나로 그 아이의 성실함과 노력을 판단해버리는 건 너무 안일하지 않아?

빠른 포기가 왜 문제야?

내가 너무 하기 싫고, 못하는 것 같으면 빠르게 포기할 수도 있는 거야. 문제는 포기하고 나태하게 노는 것이지. 곧바로 다른 도전을 한다면 성실한 것이고 그 결과가 좋다면 판단력이 좋다고 볼수도 있는 거야.

성적이 높은 사람은 사회에 나와서도 뭐든지 잘한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거야. 어쨌든 머리가 좋고 성실했으니까 좋은 성적을 얻었겠지. 하지만 다른 분야로 일찍 진출해서 좋은 성과를 낸 사람도 똑같이 뛰어나고 성실했기 때문에 성공한 거야. 굳이 수능으로만 예를 들 필요는 없다는 거야.

뭘 할지 잘 모르겠으면 일단 공부를 해라?

맞는 말일 수도 있어. 그런데 수능이라는 길 이외에는 보여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게 맞는 건가? 그러니까 아이한테 공부 시키려고 일부러 시야를 가려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거 아니냐는 거야. 그건 부모의 욕심이지.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야.

뭐든 배워놓으면 나중에 쓸모가 있다고 말하잖아. 그런데 왜 그게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어야 하냐는 거야. 뭘 배워도 도움이 되면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해야지. 그런 말은 수능 공부를 시키기 위한 억지스러운 핑계라는 거야.

수능도 좋은 인생 경험이 된다?

물론 누군가한테는 수능 공부의 내용과 공부 하면서의 과정과 시험을 치는 그 과정이 인생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느낄 수는 없다는 거야. 모두에게 그렇게 느끼라고, 내가 느꼈으니까 너도 수능 공부가 인생 경험이 될거니까 해야만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잖아.

누군가한테는 그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느껴지고 시간 낭비로 느껴질 수도 있어. 어떤 방식이 더 나은지, 옳은지는 따질 필요가 없어. 그것은 스스로 증명하는 거야. 단지 너무 한가지 생각만 옳다는 식으로 강요하려고 든다는 것이 문제라는 거야.

수능은 과연 좋은 것일까?

어떤 나라에서는 성기를 훼손하는 성인식을 한다고 하더라. 그것도 좋게 보면 참을성을 길러주는 좋은 제도라고 말할 수도 있어. 수능도 어떻게 보면 학대를 미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습량을 강요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야.

수능은 교육이 아닌 것 같아.

필수적인 교육은 필요하지. 그런데 어느 단계부터는 교육이라기보다 수능을 위한 도구로만 이용된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등수 나누려고 필요없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야. 자격증을 따려고 보는 시험은 관련된 정보이기라도 하잖아. 그런데 수능은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까 너무 포괄적이고 직관적이지 못한 것으로 시험을 봐.

수능이 꼭 나쁘다는게 아니야.

다 내팽개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도 아니야. 결국은 스스로 선택할 문제지. 내가 수능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이 나와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법도 없지. 그런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다른 분야로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내가 수능시험에서 상위권 성적이 나올지 불확실한 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그런데 왜 굳이 수능을 대세처럼 생각하고 보편적이고 현실적인 것처럼 생각하냐는 거야.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너무 다수가 한쪽에 편중되어 있는게 문제라는 거야. 수능에 대다수의 아이들이 도전하는 순간 부터 다수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이지 못한 도전이 되는 거야. 노력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는 말을 수능에 가장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거야.

수능은 경쟁력이 있을까?

수능 점수를 통한 능력과 노력의 평가는 대한민국 한정이잖아. 세계로 가면 능력이 우선일텐데 말이야. 능력을 키워야 할 시간에 수능 공부를 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 차라리 노는게 낫지. 무엇을 위해 아이들에게 그런 고생을 시키냐는 거야.

사람은 다 다르다.

천재가 아니면 세상에 나를 맞춰야 한다?

그게 꼭 현실적인 희생이고,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선택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걸까?

나는 맞추는 걸 잘하는 천재도 있다고 생각해. (눈치가 빠르고, 이해력이 좋고,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반대로 맞추는 것을 지독하게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기 소질에 맞는 것을 해야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야.

완벽하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완벽하게 맞추는 것만이 정답도 아니라는 거야. 이상적이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서 그런게 아니고 그게 그나마 현실적인 선택일 수도 있는 거야.

오히려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사는게 천재만이 할 수 있는게 아닐까? 적당히 타고난 사람들이 세상의 유행이나 기본을 따라가다가 아무 색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잖아. 어쩌면 타고나지 않은 사람일수록 더 고유한 나만의 개성을 살리고 내가 잘하는 것에 올인하는게 맞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세상에 맞추는 거야말로 타고나야 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거꾸로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말이야.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준다?

결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간 이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연예계에 데뷔한 사람도 있더라. 그만큼 의지가 강하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이겠지. 그런데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을까? 누구나 다 의지와 노력만으로 여러방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누구나 의지가 그렇게 강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천재도 아니면서, 천재 흉내내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오히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온 후에 하고싶은 것 하라는 말이 더 천재한테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천재가 아니니까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실 천재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 같아. 천재가 아니고서 어떻게 다 잘해. 무엇인가를 공략한다고, 공부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게 아니야. 소질이 있어야 해. 물론 내가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 그러니까 일단 해봐야지. 그런데 실패를 노력의 부족으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 보기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건 천재한테나 할만한 말 아닌가?

인생에서 분명히 더 성공하기 좋은 안정적인 공략은 존재하겠지.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누구나 같은 전략을 써서 다 성공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런 이 세상의 완벽한 진리와 같은 공략이 존재할 수 있겠어? 아무리 좋고 안정적인 전략이라도 사람에 따라 안 맞을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나만의 전략을 세우는 것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야.

예를 들어 롤 프로게이머를 하려고 한다면

특정한 챔피언만 잘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롤에서 특정한 챔피언만 잘해서 유명한 스트리머가 될수도 있는 거야. 그런데 꾸준히 방송을 하는게 힘들면 유튜버를 할수도 있는 거야. 무조건 틀에 맞추려고 하기보다는 나의 특성이나 개성도 하나의 조건으로 봐야 한다는 거야.

그 머리를 공부에 썼으면… 그걸 할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어떤 한가지를 아주 오랜 시간 노력해서 고수가 된 사람한테 그 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에 갔을거라고 말하잖아. 사람이 무슨 일에든 똑같은 노력을 하는게 가능할까? 그리고 하나를 노력해서 최고가 됐다고 다른 것도 노력하면 최고가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한국형 스티브 잡스를 만들자?

우리나라에서도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를 발굴하자면서 교육을 하고 창업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 그것도 물론 의미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개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려는 도전을 응원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도전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지. 기존의 경쟁을 통해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새로운 성장동력? 창의력? 그런 것들은 사람의 다름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사람이 모두 생각이 다르고 잘하고 못하는게 다르잖아. 그 다름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것들이 많이 발견되고 만들어지지 않을까?

타입에 따라서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현실에 잘 적응하는 타입이 성공하려면 현실에서 내가 잘할 것 같은 부분을 공략하면 되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만 잘하는 타입이 성공하려면 나의 장점을 발전시킨 후에 현실에서 내 능력을 발휘할 부분을 찾아내야지.

내가 몰입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 같아.

사람이 다 다르니까 몰입할 수 있는 것도 다르겠지. 내가 몰입하기 쉬운 것을 하면 나도 재미있고 또 그만큼 적성에 맞고 잘할테니까 세상에게도 이롭겠지.

자신의 취향보다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상황에 나를 맞추는게 취향인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살면 돼.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정답이라는 듯이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거야.

막연한게 오히려 더 분명할 수도 있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런데 사실 그것도 노력 보다는 타고난 재능의 부분일 수도 있어. (명확한 목표를 정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것도 생각보다 어려워.) 남을 따라서 어설프게 목표를 정해서 어설프게 노력하느니 막연해보이지만 성과, 결과 따지지 않고 묵묵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나가는게 더 분명한 방향일 수도 있다는 거야.

즐길 수 없으면 피해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아. 현재 우리나라에서 더 필요한 말은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말 같아. 이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 누군가는 뭐든 즐기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그런 선택을 내리는 사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모두가 그 사람처럼 살수는 없는 거야.

하고 싶은 대로 살아.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사람도 사실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타고난 성향에 의한 선택이야. (물론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경우도 있긴 하겠지.) 그런데 왜 남들이 보기에 막연하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무책임하다고 욕을 먹어야 해? 누가 성공하고 성공하지 못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건데 말이야.

현실적이고 평범한 삶을 비하하거나 부정하는게 아니야. 그것만 정답은 아니라는 거야.

노력은 만능이 아니다.

노력은 노력일 뿐이야.

노력하면 뭐든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데 실패하면 어떻게 할거야? 세상이 불공평하다면서 불평하고 포기할 거야?

노력으로 재능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말을 노력을 비하하는 말이라며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노력이면 다 될 것처럼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잔인할 수 있는 거야.

성공한 사람은 다 열심히 노력한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거야?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도 열심히 노력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거 골라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다 성공하길 바라는 건 욕심 아니야? 당연히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도 있는 거야.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하는 것을 찾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거야.

재능이 전혀 없었는데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사실 어느정도의 재능이 있었던 거야. 정말 재능이 없으면 뭐가 좋고 나쁜지도 모르거든. 재능 없이 성공할 수는 없어.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 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해.

그렇다고 내가 잘하는 것만 하라는게 아니야. 내가 뭘 잘하고 못할지는 아무도 몰라. 일단 뭐든 해봐야 알 수 있어. 그중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게 가장 효율적인게 아닐까?

될놈될 안될안이라는 말이 있잖아.

애초에 난 타고나지 못했으니까 노력해도 안 된다면서 도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말이지. 물론 뭐든 다 잘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또는 어릴때부터 어떤 한가지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아이도 있겠지.

부러워할 필요 없어. 그저 남들보다 일찍, 분명하게 자기 재능을 발견한 것 뿐이야. 그리고 내가 타고난 재능이 단 하나도 없다고 어떻게 단정지어? 그거야말로 오만한 거야.

힘들면 포기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다른 것을 찾아볼 생각을 해야지. 주변 환경 탓만 하지 말고 내가 뭘 타고났는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지.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만 훌륭한 장인일까? 도구를 가리지만 도구만 주어지면 그 누구보다 뛰어난 최고의 장인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어떤 환경에서든 잘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 핑계야? 좋은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도 노력이야.

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어떤 것이든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는게 아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봐.

모두 결과론적인 것이다.

내가 시끄러워서 집중을 못하겠다고 하면 핑계가 되고 성공한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설득력이 생기잖아? 무조건 노력으로만 모든 것을 하려고 하거나, 세상에 나를 맞추려고만 하기보다는 내가 날뛸 수 있고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조성하려고 하는게 중요하다는 거야. 오그라들거나 당장은 초라해보여도 내가 주인공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해.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나를 믿고 내멋대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어. 그것을 증명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재미도 소질 중에 하나다.

어떤 것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도 소질이자 재능 중에 하나인 거야. 그래야 더 그 일을 즐기면서 열심히 오랫동안 할 수 있을테니까. 재미가 전부라는 말은 아니야. 재미를 느낀다는게 더 잘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야.

나루토에서 록리를 보고 노력의 천재라고 하잖아? 그것처럼 재미를 잘 느껴서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열심히 할 수 있는 천재도 있을 수 있는 거야.

어떤식으로 말해도 말이 돼.

실패한 사람을 보면서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다고 해도, 재능이 없어서 실패했다고 해도 말이 돼. 반대로 성공한 사람을 보면서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재능 때문에 성공했다고 해도 말이 돼. 그러니까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볼 뿐이지 사실 재능과 노력의 정도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가 없어.

노력 VS 재능이 아니야.

성공하려면 재능, 노력 둘 다 필수적이야.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타고났는지도 명확하게 알 수 없어. 그래서 우리는 내가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찾아내서 그것을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 없어. 노력, 재능 중에 뭐가 더 우위인지 따지는 건 아무런 쓸때없는 시간낭비일 뿐이야.

노력의 정도를 비교값으로 보지 말자?

노력은 어차피 필수고 노력을 안 하면 성공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노력은 누구나 비등비등하다고 치자는 거야. 그 이외에 소질과 쟁능, 창의성 같은 것을 더 확실한 비교 요소로 보자는 거야.

수능을 비하해선 안 돼.

수능은 현실이고 현재로써는 가장 현실적인 최선의 판단 방법이야. 그렇지만 너무 수능만이 정답이고 만능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분명히 다른 길, 더 나은 길도 있을 수 있다는 거야. 또한 수능에 아쉬움이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인정해야겠지.

정리하면 이런 거야.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것을 비하할 순 없어. 남들 놀때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거야.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노력을 헛짓으로 비하해서도 안 된다는 거야.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성적이 나쁜 것처럼 다른 것도 열심히 했지만 당장 성과가 안 나올 수도 있는 거야. 그것을 함부로 하찮게 여기고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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