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은 하나의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

채식을 시작한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채식을 하면서 든 생각이나 느낀점들을 써보려고 한다.

채식을 하면서 첫번째 든 생각은 무슨 음식이든 적정량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콩이나 마늘, 밥, 물, 소금, 견과류 등등도 부족하면 문제가 되기도 하고 너무 많이 섭취해도 문제가 생기는 것처럼 동물성 식품, 고기도 적정량이 있는게 아닐까?

동물성 식품이 독인지 약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동물성 식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좋은 영양소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동물성 식품을 먹으면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와 같은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물성 식품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동물성 식품, 고기를 먹는 양을 훨씬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생각은 지금 사람들이 보통의 골고루 먹는다는 정도보다 고기나 동물성 식품의 비중을 1/10 이나 1/100 정도로 줄여야 보편적인 적정량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현재 보편적인 적정량으로 정의되어 있는 정도가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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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비건이 아니다. 굳이 완벽한 비건을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건은 종교가 아니다. 더 극단적인 비건을 할수록 신앙심이 더 깊다거나 더 우월하다거나 더 자연과 생명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든 인종차별반대 운동이든 너무 과도한 해석과 극단적인 주장은 역차별과 갈등만 초래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비건의 정도는 그저 개인의 취향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 건강과 지구의 환경과 동물의 생명을 생각해서 절제하고 덜 먹는 것만으로도 의미와 효과는 충분하다. 어딘가에서 본 글인데 소수가 극단적으로 비건을 지키는 것보다는 다수가 어설프게 채식 위주로 먹는 것이 더 세상에 큰 기여를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부의 사람들이 전재산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다수가 조금씩이라도 돈을 모으는 것이 더 큰 기부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꼭 전재산을 기부해야만 진심인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서 완벽한 비건을 추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완벽한 비건만이 옳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반감만 불러올 수 있고 일반인들이 시도하기도 겁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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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건은 내 건강을 위하는 하나의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완벽한 채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라면도 먹고 액젓이 들어간 김치도 먹는다. 그러니 완벽한 비건이라고 할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따로 동물성 식품을 먹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냥 내가 좋을대로, 편할대로 채식 위주로 먹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딱히 정해놓은 것도 없다. 그저 매 끼니마다 큰 김 한장씩 꺼내서 먹고 있을 뿐이다. 그 이외에는 평범하게 매 끼니 채소 반찬으로 비빔밥을 해먹는 느낌이다. 그리고 견과류나 과일 등등도 최대한 챙겨먹으려고 한다. (억지로 챙겨먹는다기보다는 간식 개념으로 먹는다.)

따로 운동을 하거나 하지는 않고 게으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체중은 채식을 하기 전보다 빠졌고, 일정한 체중을 유지중이다. 채식을 하기 전에는 소화가 잘 안 되고, 뒷목이 땡기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이 없다시피 하다. 그래서 나는 너무 좋고 편하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먹고 싶은것을 먹으면서 열심히 운동해서 체중도 유지하고 혈액순환 잘 되게 해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겠지. 그런데 나처럼 게으르고 체력 약한 사람한테는 단지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것만으로 몸의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니 아주 좋은 해결책,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명을 위하고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먹고 싶어도 참고 견디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의미는 있지만, 나는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내 건강과 편안함을 위해서라도 채식은 충분히 좋은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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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채식은 동물의 생명과 지구의 환경을 위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내가 죽기 전까지 뭘 먹느냐에 따라 내가 지구의 환경에 어떤 영향을 어느정도 끼치는지 정도의 차이가 분명히 생길 것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안 먹고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무엇이든 먹긴 해야 하는데 무엇을 먹을 것이냐는 것이지. (그렇다고 내가 고기를 먹는 대신 그 이상으로 이 세상에 기여를 하고 동물들을 도와주고 지구 환경을 위한 운동에 동참할 자신도 없다.)

가축을 먹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땅이 인간이 먹을 식물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땅보다 몇 배는 더 많다고 한다. 결국 고기를 덜 먹으면 인간이 땅을 덜 쓰게 될 것이다. 물론 고기를 안 먹는 대신 식물의 섭취량이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사용하던 것보다는 훨씬 더 적은 면적을 사용하겠지. (인간의 수가 비슷한 조건일 때 말이야.)

또한 지구상 포유동물의 60%는 가축이라고 한다. 나머지 40% 안에 인간과 야생동물이 있는 거겠지. 이건 정말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같다.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이냐를 따진다기보다는 이런식으로 계속 인간이 지구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가 걱정된다. (뭐 내가 죽기 전까지는 어찌어찌 버틴다고 해도 내가 죽고 나서 그 이후에는? 내가 죽고 나서의 이야기니까 나몰라라 해도 될까?)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과 같은 질병으로 인해서 동물들을 산채로 묻거나 하는 일도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할까? 인간이 고기를 많이 먹으니까 많이 키워야 하고, 많이 키우기 위해서는 동일한 유전자의 동물을 좁은 우리 안에서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키워야만 한다. 결국 인간이 고기를 덜 섭취하면 동물을 덜 키워도 되고 설령 살처분을 한다고 해도 죽는 동물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사실 그런다고 공장식이나 살처분이 다 사라질지는 모르겠다. 공장식 사육은 그 자체를 따로 문제로 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어쨌든 동물을 키우면서 생기는 메탄가스, 오, 폐수 자체가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한 살처분을 할 때도 오염이 일어날테니까. 소비를 줄여서 가축의 숫자를 줄인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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